연목구어(緣木求魚)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 ⑪

Khajuraho의 Kandariya Mahadeva 사원의 조각. 11세기.


카주라호라는 작은 도시는 인도 뉴델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600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9-12세기 찬델라 왕조의 수도였다. 그곳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색정적인 조각들로 가득한 사원들이 21개 있다. 어떤 곳에는 세 남자가 한 명의 여자와 엉키어 있고, 다른 곳에는 한 남자가 거꾸로 누어서 여자와 즐기고 있는 옆에서 두 여인이 이를 거들고 있다. 원래는 이런 사원이 85개였는데, 무굴 및 모슬렘의 침략 때 그보다 더 야한 것들은 다 파괴되어 그렇다니 알만한 일이다. 아무리 힌두교 가르침에 ‘섹스는 하느님이 만든 작품 중의 백미’라는 게 있다 해도 이는 너무하다 싶을 수준의 조각들이 많다.

 

왜 하필 성스러운 사원의 외벽을 이렇게 장식했을까? 몇 가지 학설들이 있지만 가장 믿을 만한 것 하나만 소개한다. 10세기경 인도 중부 사람들은 그 깊은 신앙심 때문에 사랑보다 참선에 더 몰두했고, 그래서 인구는 계속 줄었다. 문맹률이 높고 책은 귀한 시대였다. 인구감소가 국가의 존망과 직접 관계가 있는 일임을 안 당시의 지배자들이 이런 식으로 백성들의 성적 충동을 자극하여 인구를 증가시키려 했다. 그들은 성공했고, 이 왕조는 그 복잡한 중세 인도 역사에서 수백 년을 살아남았다.

 

이와 비슷한 예는 옆 나라 일본에서도 있었다. 무사들이 할거하던 에도시대는 인구 특히 남자의 인구가 줄면 그 지역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다이묘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일본의 성이 유난히 개방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목판을 통한 춘화의 남발이었다. 19세기 일본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도자기를 쌌던 종이들이 거의 버려진 춘화였다고 한다. 지금도 유럽의 여러 성 박물관들은 이들 그림으로 가득하다. 일본의 부세회가 19세기 말 유럽의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고, 반 고흐가 일본 춘화를 2백 점 정도 갖고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걱정이다. 전보다 외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서 개방, 진보된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성학을 너무 모르는 소치이다. ‘성으로의 초대’는 물론 동물도 수컷이 한다. 그러나 어쩌다가 승강기에서 몸만 잘못 스쳐도 성추행당했다고 고소할까봐 걱정이 된다면 큰일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다. ‘독재는 아주 하기 쉽다. 그저 경범을 엄하게 다스리면 그걸로 끝이다’하는 말이 있는데, 자기가 의도치 않은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안았다가 재판을 받는 경우도 보았다. ‘연목구어’(緣木求魚). 지금 우리가 출산율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건 나무에 올라가 낚시 내리고 물고기 잡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김원회 칼럼 -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① 출산율에 대한 오진
② 출산율과 사랑의 변질
③ 출산율과 성태도
④ 처음 접한 '문화영화'
⑤ 무서운 포르노
⑥ 포르노와 자본주의
⑦ 포르노 배우와 창녀
⑧ 로스앤젤레스의 도우미
⑨ 성사(性史)
⑩ 성평등

⓫ 연목구어(緣木求魚)

  • Blank 2f561b02a49376e3679acd5975e3790abdff09ecbadfa1e1858c7ba26e3ffcef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댓글
  • 춘화 한 장 한 장 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를 엮은 책을 봤는데 요즘 야설 못지 않더라고요. 상상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했어요. 역시 일본을 성진국이라 부르는 이유가ㅎㅎㅎ
  • 상당한 수준이신듯하여 필자가 쓴 '한국성사'에서 일부 발췌하여 부칩니다.
    <원래 춘화는 관상, 주술, 또는 성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춘화는 중국이나 일본이 목판까지 동원하며 대량 출판한 것에 비하면 매우 빈약하지만 몇 몇 전문 화가들의 화첩이 남아 있고, 그 외의 민화들도 적잖이 있다. 중국의 춘화는 체위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이 많은 것으로 보아 교육용으로나 여러 가지 기교들을 섭렵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들이 많은 것 같고, 일본의 경우는 사무라이 시대를 거치면서 인구 특히 남자들의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개방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춘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들과는 다른 조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춘화들은 성 유희 장면을 담고 묘사하면서도 그 장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이야기를, 즉 당대 사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을 암시하고 있다. 또 그 배경을 이루는 바깥 풍경이나 실내 장식품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예술성을 지닌 풍속도 같은 차원 높은 것들이 많다. 조선의 전문 화가들이 그린 춘화들은 이렇게 매우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 또 조선의 춘화는 분위기 중심적이고, 대체로 보편적 형태의 성적 행위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점은 일본의 우키요에처럼 심하게 과장되어 있거나 일탈적이지 않으며, 중국의 춘화보다 훨씬 덜 색정적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의 춘화들을 본떠서 그린 많은 민화들이 있어 간혹 잘못 인식되기도 한다. 일본의 춘화는 화려한 의상과 가구, 과장되게 매우 큰 성기, 일일이 그려넣은 음모가 특징이며, 때론 기괴하고 변태적인 속성도 보여준다. 일본의 춘화는 우선 강렬한 인상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춘화는 ‘소녀경’ 등에서 나오는 다양한 성교 체위를 묘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묘사에 있어서도 그들 특유의 정교함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김원회 씀
Thumb 1593591084.1134956
페이스북에서 속삭을 만나보세요
속삭
Original 1628810363.5313268
Original 1628810343.805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