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性史)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 ⑨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


궁녀는 왕의 여인들이었고 그들의 간통은 죽음이었다. 남녀 모두 사형이었는데 특히 여자는 ‘부대시 참형’이라 하여 바로 목을 베어 죽였다. 다른 사형수들은 대개 춘분이나 추분 때까지 기다려 줬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민담집 ‘금계필담’에 수록되어 있는 다음 이야기가 더 빛이 난다.


어느 날 밤, 성종은 내시 한 명만 데리고 홍문관을 시찰했다. 그곳에서는 숙직 중인 조위란 선비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성종이 문을 열려는 순간, 그 방의 뒷문을 열고 얼른 들어가는 궁녀가 있었다. ‘저는 평소 선비님을 늘 사모했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조위가 완강히 거부하자, 궁녀는 칼을 꺼내 자살을 하려 했다. 조위는 할 수 없이 궁녀를 끌어안았다. 방안에서는 불이 꺼졌고, 남녀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조위가 이를 자복하며 사형을 자청하자 성종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를 덮어준다.


국법은 엄해도 예외는 있었다. 그 외에도 성 관련 사건들을 왕이 재량에 따라 달리 처리한 경우는 많다. 인재를 잃기 싫었고, 성적 욕구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약점인가를 통치자로서 알았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의 ‘성사’, 즉 성의 역사가 있다. 내가 언제 성에 눈을 떴으며, 그 욕구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남들이 모르는 크고 작은 역사들이, 어쩌면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비밀들이 엄청나게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대 지식인을 자처하는 우리들은 최소한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보다는 나아야 할 것이다. 작금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적 약점을 대서특필하는 매스컴이나 이들에게 수없이 돌을 던지는 국민들을 보면서 ‘이러다가는 우리가 하늘의 벌을 받을 것’ 같은 걱정마저 든다. 성적 약점은 위로는 통치자로부터 아래로는 걸인에 이르기까지 다 있는 거다.


사회나 국가의 유능한 인재들을 이렇게 죽여서는 절대 안 된다. 사람은 돈이나 사랑을 잃었을 때가 아닌 명예를 잃었을 때 자살을 생각한다. 특히 지도층 운운하는 것은 더 나쁘다. 그들도 우리와 평등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돌을 덜 던져도 안 되지만 더 던지는 것도 옳지 않다. 그들은 피나는 노력과 경쟁을 뚫고 거기서 사회와 국가를 위해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소위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게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할까? 아직 확실치도 않은 일을 그것도 상대 여성은 이름도 얼굴도 숨겨주면서까지 이래야 하는가?


긴 얘기를 줄이는데, 성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보수화 사회에서는 출산율은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의 목소리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김원회 칼럼 -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① 출산율에 대한 오진
② 출산율과 사랑의 변질
③ 출산율과 성태도
④ 처음 접한 '문화영화'
⑤ 무서운 포르노
⑥ 포르노와 자본주의
⑦ 포르노 배우와 창녀
⑧ 로스앤젤레스의 도우미

❾ 성사(性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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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댓글
  • 태성성대를 이끌었다는 성종. 역시 인물은 인물이네요.
    • 그러나 성종은 '제가자손금고법'이라하여 과부가 개가를 하면 그 자손이 과거를 못보게 하는 법을 만들어 조선후기의 우리나라의 성문화가 극도로 보수적으로 되는 데에 큰 몫을 한 왕이기도 합니다.
      다만 위의 얘기는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마저 써 봅니다. 내가 쓴 '한국성사'란 책에 있는 거라 쉽게 카피해 옮깁니다.
      <그런데 이를 목격했던 신종호란 선비가 있어 이 일을 임금에게 보고했고, 성종은 그에게도 함구를 지시했다. 성종은 유능한 관료들을 잃기 싫었던 것이다. 그리곤 신종호를 평안도 암행어사로 파견했다. 성종은 떠나는 신종호에게 당부했다.
      ‘평안도에는 미인이 많으니, 너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 신종호가 떠난 뒤, 성종은 평안도 관찰사에게 어떻게든 그에게 평양 기생을 붙여주라는 밀명을 내렸다. 관찰사는 미모가 매우 뛰어난 옥매향이란 관기를 시켜 그를 유혹하게 했다. 첫눈에 반한 신종호는 신분을 밝히라는 그녀의 요구에 자기가 암행어사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초라한 옷차림에 거절당할까 두려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날 밤, 신종호는 왕명을 어기고 기생을 가까이했고 정표로 부채까지 주어 물증을 남겼다.
      그가 임지에서 돌아왔을 때 성종은 ‘자네 실수는 지난 번 조위의 사건과 다르지 않으니 그리 알도록’ 일렀다. 그리고는 조위와 궁녀를, 신종호와 옥매향을 연결해주었다. 각각 살림을 차리도록 했던 것이다.>
    • 와~ 이런 재미난 얘기가 또 있었군요. 인물을 알아본 성종의 혜안에 감탄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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