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과 사랑의 변질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 ②
나는 우리나라의 초라한 출산율과 관련된 여러 명제들을 제시함으로써 귀납적 방식으로 동료 성학자들이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라고 뚜렷한 원인을 다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존경하는 학형들께서 써주신 댓글을 읽고 우선 약간의 연역적 접근을 해보기로 했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때, 사망원인으로 흔히 심장마비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는 결과이지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막상 심장을 멎게 한 원인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 먼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출산율 저하의 가까운 원인은 ‘생식적 성(reproductive sex)’의 기피이다. 흔히들 섹스리스를 말하고 이를 남자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성을 기피하게 되는 또 가까운 원인들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성의 콘셉트가 바뀐 것과 ‘비생식적 성표현(nonreproductive sexual expression)’이 늘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학이라는 학문의 중요성을 알리고 앞으로의 이해에 도움이 될듯하여 의식적으로 성학용어들을 쓰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매우 알기 어려운 문제 같지만 기실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뭐를 만들어서 경험하고 거기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역사의 교훈은 어떠했던가를 보게 마련인데 원인의 실마리 또한 이렇게 접근하면 된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에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서 고민했던 민족이다.
먼저 사랑의 변질이다. 이기적인 사랑이 헌신적인 사랑을 압도한다. 사랑의 정의 중에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다 주고도 아깝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있는데, ‘저 여자가 내 아이를 낳아 주었으면’ 또는 ‘나는 저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랑이 너무 줄었다는 얘기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김원회 칼럼 -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❷ 출산율과 사랑의 변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