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호르몬인 줄 알았는데"... 옥시토신의 반전
신뢰도 질투도 같은 호르몬에서 나온다, 옥시토신의 진짜 역할

흔히 '사랑 호르몬' 혹은 '포옹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 엄마와 아기 사이, 그리고 연인 사이의 애착을 만들어 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이 호르몬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때로는 전혀 다정하지 않은 쪽으로도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심리 매체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가 그간의 연구를 정리했다.
옥시토신이라는 이름은 '빠른 출산'이라는 뜻에 가깝다. 처음 발견될 때부터 분만 중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유 때 젖이 도는 '사출 반사'도 옥시토신의 작용이다. 다만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피부가 맞닿는 접촉은 엄마와 아기 양쪽 모두에서 옥시토신을 분비시키고, 안정감과 친밀감을 키우며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춘다.
진화는 기존의 장치를 새 용도로 바꿔 쓰는 데 능하다. 아기의 생존을 돕던 애착 시스템이 성인의 짝 결합(pair bonding)을 돕는 쪽으로 재활용됐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일부일처를 이루는 종에서는 보상·쾌감·성 활동과 관련된 뇌 영역에 옥시토신 수용체가 촘촘히 분포한다. 성관계 중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함께 분비되면서 특정 상대가 강력한 보상과 연결되고, 그렇게 짝에 대한 애착이 깊어진다.
이 과정을 밝혀 준 뜻밖의 주인공이 '프레리들쥐'다. 이 작은 포유류는 짝짓기 때 분비된 옥시토신으로 상대를 평생의 애착 대상으로 각인하는데, 그 유대는 번식기가 지나도, 심지어 한쪽이 죽은 뒤에도 이어진다. 사람도 낭만적 끌림을 강렬한 보상과 연결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한 사람에게 집착에 가깝게 빠져드는 '리머런스(limerence)'가 그 극단적 예다.
반전은 옥시토신을 코 스프레이 형태로 투여해 행동 변화를 직접 측정하면서 드러났다. 옥시토신은 낯선 사람 사이의 신뢰를 높이고 협력을 끌어낸다. 그런데 동시에 내집단에 대한 충성과 결속을 강화하고, 사회적 배제에 대한 불안을 키우며, 권위자의 의견을 더 쉽게 믿게 만들기도 한다. 다정한 유대를 넘어, 편가르기와 편애로 이어질 수 있는 양면성이다. 연구자들은 옥시토신이 단순히 포근한 기분을 만드는 물질이 아니라, 기회와 위험이 섞인 사회적 신호에 주의를 돌리게 하는 '사회적 현저성(social salience)'의 신호라고 본다.
치료제로서의 기대는 한풀 꺾였다. 옥시토신은 애착과의 관련 때문에 자폐 스펙트럼, 산후우울, 조현병 치료제로 시험됐지만, 산후우울에 대한 비강 투여는 효과가 약하고 엇갈렸다. 연애·애착을 북돋우는 효과 역시 제한적이고 불분명했다. 옥시토신이 특정 신경세포를 직접 켜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이끄는 핵심 신경전달물질들의 신호를 억제하거나 증폭하는 '조율' 장치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복잡성을 보여주듯 2023년의 한 연구(Berendzen 등)는 프레리들쥐에서 옥시토신 수용체 유전자를 지워도 짝 결합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보고해 예상을 뒤집었다. 발달 과정에서 다른 조절 시스템이 그 빈자리를 메워 유대 형성을 되살리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옥시토신 연구는 손쉬운 치료제 대신, 이 호르몬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남겼다. '사랑 호르몬'이라는 별명이 담지 못한, 훨씬 정교한 얼굴이다.
박주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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