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한 피임의 역사...악어 똥부터 콘돔까지?!
이탈리아 해부학자 가브리엘레 팔로피오, 1564년 콘돔에 대한 최초의 임상 기술을 남겨

인류의 피임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동물의 배설물과 식물 재료가 임신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거론됐고 이후 식물과 부적, 차단막을 거쳐 콘돔과 경구 피임약으로 방식이 바뀌어왔다.
영국 히스토리 매체에 따르면 기원전 약 1825년 작성된 카훈 부인과 파피루스는 생식 문제를 다룬 가장 오래된 기록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문헌에는 악어 똥을 피임에 활용하는 내용이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사용법을 놓고는 지금도 해석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성관계 전 악어 똥을 체내에 넣어 정자의 이동을 차단하려 했다고 본다. 반면 이를 태워 공간을 훈증하는 방식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보다 약 300년 뒤 작성된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한층 구체적인 피임법이 담겼다. 대추야자와 꿀, 아카시아 잎을 으깬 뒤 양모와 섞어 질 안에 넣는 방식으로 오늘날의 다이어프램이나 자궁경부 캡과 유사한 형태로 평가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실피움이라는 식물이 대표적인 피임 수단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확히 어떤 식물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아프리카 도시 키레네에서는 주요 수출품으로 거래될 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피움은 식품과 약, 최음제뿐 아니라 피임 목적으로도 활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트 모양과 닮은 씨앗이 오늘날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기호의 기원에 영향을 줬다는 가설도 있다. 다만 지나친 채취로 결국 멸종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식물을 활용한 피임법은 실피움에 그치지 않았다. 야생 당근의 일종인 퀸앤스레이스는 씨앗을 갈아 물에 타 성관계 뒤 마시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여기에 차단막을 활용한 시도도 이어졌다. 18세기에는 카사노바가 레몬을 반으로 자른 뒤 과육을 제거하고 껍질을 질 안에 넣어 차단막처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세에는 과학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방식도 널리 쓰였다. 일부 여성들은 족제비 고환을 다리에 묶거나 말린 고양이 간, 동물 뼈 등을 피임 부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임 수단의 역사는 콘돔이 등장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초기 콘돔은 동물의 창자나 거북이 껍데기 등으로 만든 형태까지 존재했다.
콘돔에 대한 최초의 임상적 기록은 1564년 이탈리아 해부학자 가브리엘레 팔로피오가 남겼다. 그는 매독 관련 저술에서 리넨으로 만든 덮개를 리본으로 음경에 고정하면 질병 전파를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7세기에는 영국 찰스 2세에게 피임용 덮개를 제공한 ‘콘돔 박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만 이 인물이 실제 존재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고 콘돔이라는 단어의 어원 역시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콘돔은 19세기 고무 제품이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피임 수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질병과 원치 않는 임신을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수단도 이전보다 폭넓게 보급됐다.
현대 피임의 가장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는 1960년 최초의 경구 피임약 승인이다. 피임약은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와 민 추에 장, 부인과 전문의 존 록의 연구를 토대로 개발됐으며 산아제한 운동가 마거릿 생어와 캐서린 매코믹도 연구와 개발 과정에 중요한 지원을 제공했다.
경구 피임약은 간편한 복용 방식과 높은 피임 효과를 앞세워 빠르게 확산됐다.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시기를 보다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고등교육 진학과 직업 활동 확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편 피임의 역사는 동물 배설물과 식물, 부적에 의존하던 경험적 방식에서 콘돔과 경구 피임약 같은 현대적 수단으로 이동해왔다. 수천년에 걸친 변화는 임신을 막는 방법 자체를 바꿨을 뿐 아니라 개인이 출산 시기와 삶의 경로를 선택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관리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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