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금지를 둘러싼 미국 성교육 논쟁
미국 대법원이 연방 헌법에 명시된 낙태 권리를 폐지한 이후 낙태를 금지한 주를 중심으로 성교육의 범위가 축소되거나 제한하는 법안이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는데요. 성문화에서 있어 가장 진보적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미국은 연방법으로만 낙태 제한이 없고 각 주법으로 제한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낙태의 권리가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되어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죠. 이후 미국에선 판례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에 이 판결로 인해 미국 내에서 낙태를 완전히 금지하는 법률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2022년 6월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면서 대반전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미국 주의 절반 이상이 낙태를 금지하게 된 것!
사실 미국은 주마다 세세하게 법이 다르고 속지주의를 따르지 않는 곳도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국가의 기본 가치가 청교도인지라 낙태에 무조건 우호적인 것도 아니고요. 그러다 보니 100명당 2명꼴로 낙태율이 의외로 낮은 것이 특징! 이는 싱글맘에 대한 비교적 긍정적 인식, 피임 교육의 증가, 국가 자체의 강한 종교성 등에 기인한 것인데요. 현재 미국은 각 주마다 낙태 관련 시행법에 따라 학생들에게 실시하는 성교육 방법이나 범위가 제각각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미국은 ‘낙태권’과 ‘낙태 금지법’을 두고 혼란으로 성교육 현장에서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즉 낙태권을 반대하는 일부 주에서 시행되는 제한적인 성교육 법안을 보면,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논의를 금지하고, 피임에 대한 지침을 삭제하는 대신, 성교육 커리큘럼에서 금욕만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된다는 요지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낙태를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하는 주들 중 많은 주에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성교육을 아예 실시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미국의 성교육 정책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중인 SIECUS(Sexuality Information and Education Council of the United States, 성에 관한 정보 및 교육 위원회)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에서 32개 주와 워싱턴 D.C.만이 행정 명령에 따라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무 성교육을 하는 주에서도 15개 주와 워싱턴 D.C.는 금욕 위주로만 교육을 하고 피임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지 않는 나머지 주에서 몇몇 곳은 성교육을 아예 요구하지 않거나 피임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범주의 성교육은 아예 현장에서 가르치지도 않는 거죠.
한편 미국 일부 주에선 2022년 대법원판결로 부활한 낙태 금지법을 다시 폐지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미국 애리조나주 하원은 현지시간 4월 24일 낙태 전면 금지법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상원으로 보냈습니다. 이는 애리조나주 대법원이 지난 9일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를 제외하고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에도 모든 시기에 낙태를 전면 금지한 1864년의 주법을 다시 시행할 수 있다고 판결한 이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주 하원이 이를 뒤집는 입법을 처리한 것이었죠.
낙태를 제한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성적 권리가 무엇인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신을 옹호하는 방법,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아닐까요? 현재 미국에선 주마다 성교육 정책이 달라 정작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성교육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방법, 가치, 태도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도록 만들어진 것인데요. 낙태 규제가 가장 심한 주가 성교육 내용이 가장 미흡하다는 아이러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관리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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