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속성인 섹스나 로맨스에 얽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감정은 때로 극단적일 수 있다.

 

성학(Sexology)을 강의하면서도 잘 얘기 안 하는 부분 중에 ‘나쁜 섹스’란 게 있다. 일부 종교인이나 특수한 도덕주의자들은 항문성교, 구강성교, 동성애 등을 ‘나쁜 섹스’라고 하는데, 성학에서는 이런 것들을 나쁜 섹스로 부르지 않는다. 성학에서의 나쁜 섹스는 증오 성(憎惡 性, Hate sex), 복수 성(復讐 性, Revenge sex), 반항 성(反抗 性, Rebound sex) 같은 것들이다. 전혀 바람직하지 않고, 나아가 범죄일 수도 있는 행위들이다.

 

증오 성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의 섹스로 심리적 배경은 같지 않지만, 둘 다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부부 싸움 후의 ‘칼로 물 베기’ 섹스는 전혀 아니다. 복수 성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으로 친구를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한다. 반항 성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는 관계없지만 나의 상처를 달래보려고 제3자와 섹스를 하는 것이다.

 

고려 말의 충혜왕의 엽색행각을 보면 ‘나쁜 섹스’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충혜왕은 충숙왕의 장남으로 공민왕의 친형이다. 그는 화폐를 개혁하고 행정조직을 개편했으며, 원나라에 사는 고려인들의 귀환을 추진하는 등 정치적 역량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원나라 황족, 귀족들과 어울리며 유흥을 즐기며 방탕하게 생활해서 원나라 귀족들과 아버지 충숙왕 모두 충혜왕을 건달을 뜻하는 ‘발피(潑皮)’로 불렸다.

 

그는 아버지 충숙왕이 죽자 선친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숙공휘녕공주(肅恭徽寧公主)를 겁탈한다.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자 신하 송명리 등을 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잡은 다음 입을 틀어막고 강간했다. 원나라 공주였던 그녀는 이 일을 원에 일러바쳐 충혜왕은 원에 압송대 형부에 투옥되기까지 했지만, 원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황제의 명령을 받아 왕위에 복위했다.

 

충혜왕은 숙공휘녕공주를 강간하기 전, 아버지의 또 다른 여인이었던 수비 권 씨도 겁탈했다. 그녀는 몇 달 뒤 사망했는데, 수치심으로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해에 사망한 부친 권렴이 39세였던 것으로 보아 수비 권 씨도 매우 어린 나이었던 것 같다.

 

외숙모인 외삼촌 홍융의 처, 장인 홍탁의 후처 황 씨도 불러서 간음했다. 황 씨는 이 때문에 임질에 걸렸는데, 충혜왕은 승려 복산을 시켜 그녀의 임질을 치료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되자 많은 백성들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피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천성이 근본적으로 매우 음탕(淫湯)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연산군의 패륜엽색행각을 훨씬 능가한다. 얼굴이 예쁘면 근친관계, 혼인 여부, 신분 등에 상관없이 강간하는 등 행동에 절제가 전혀 없고 패륜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을 비롯한 고려 신하들이 원나라 중서성에 고발해서 고려에 온 원 사신에게 두들겨 맞고 포박당해 원나라로 끌려갔다.

 

한편, 충렬왕 때 최세연이란 사람은 자기의 처가 워낙 사납고 질투가 심하자 스스로 거세(去勢)하여 고자가 되었는데, 이는 일종의 역복수 성(Reverse revenge sex)이다. 즉, 미운 아내에게 이런 형태로 복수한 것이다. 역복수에도 여러 유형이 있어 때로는 자기의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섹스는 사람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처럼 ‘나쁜 섹스’는 타인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섹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