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엇 때문에 ‘양공주’가 됐나?
[김원회의 性인류학] 여성의 처녀성
필자는 1964년 군의관 2년차를 서울 북방 Y군 C면에서 보냈다. 인근 B리에는 약 3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약 600명의 이른바 ‘양공주’가 있었다. 같은 사단에 근무하던 군의관 중에 P대위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들을 배경으로 논문을 쓰고 있었다. 나도 흥미 반, 호기심 반으로 여러 번 같이 갔었다. ‘양갈보’로 불리던 그들은 당시로선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었다. 여자가 돈을 받고 성을 제공하면, 창녀로 인정된다. 이건 장사행위로 성이 완전히 개방된 현대 서구사회에서도 최하위 대접을 받는다.
나는 이들이 생활이 궁핍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또는 동생의 대학 등록금 등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의 생활형편은 말이 아니었고 아직도 보릿고개에 허덕일 때다. 하지만 이들 중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만 여기까지 와 있는 여성은 없었다. 이들 양공주들은 몇 명의 조합장이라는 약간은 나이가 든 아주머니 같아 보이는 이의 말을 잘 들어, 이들과의 면담도 이 조합장 아줌마에게 부탁하면 어렵잖게 이루어지곤 했다.
“저 포병부대에 있는 어떤 흑인 하사관은 그게 하도 커서 할 때 너무 아프니까 아무도 같이 안 자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조합장님이 당직표를 짜놓고 돌아가며 봉사를 하고 있다고요. 우리는 조합장이 시키면 꼼작 없이 따라야하거든요.” 한 여인이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도 여기 수백 명이나 있는데 맞는 사람이 있겠죠?”
“아녜요. 우리들 중 약 3분의 1은 스트레이트라고 해서 임자가 정해져 있고요. 나머지는 그 때 그 때 파트너를 정하지만 대체로 만났던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예요. 또 그래야 선물도 많이 받고.”
이런 대화도 있었다.
“아무개는 참 훌륭한 애예요. 서울의 대학 영문과를 중퇴했는데 여기서 번 돈으로 동생 대학등록금을 대주고 있거든요. 우리들이 모두 존경한답니다.”
“아니, 나는 여러분들이 대부분 여기서 돈을 벌면 집안 살림을 돕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웬걸요. 우린 대부분 집이 없거나 집을 떠난 사람들이라서 돈을 보낼 곳도 없답니다. 그리고 우리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아니 그러면 뭣 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겁니까? 나는 돈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군요.”
“군의관님, 뭘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요.”
그들에게서 들은 얘기들이 후일 나를 성학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해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때 형편은 그랬다. 이곳 여성들 대부분은 이런 저런 이유로 처녀성을 잃고 고민하다가 자포자기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여기에 오게 된 것이라 했다. 인신매매 조직에 걸려 자기의 의사와 반해서 여기에 끌려 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인에게 결혼을 전제로 몸을 허락 했는데 버림받은 여자, 밤늦게 극장에서 나오다가 골목으로 끌려가서 속절없이 당한 여자들이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들 말대로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고 했다.
모두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정조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처녀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기에 최고의 가치로 승화시켜 놓고 그 귀중한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킨다는 말인가? 정조이건, 처녀성이건 아무리 중요해도 인간이 있고서야 비로소 의미가 있을 터인데 이건 너무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화가 났다.
“여기 여자들 중 하루에 평균 두 명씩은 자살을 해요.”
이 말에 궁금했다. 이런 상황의 여인들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우리들이라고 희망이 아주 없겠어요? 이러고 살고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 한국인 애인들이 하나씩 있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 별 볼일 없는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정을 나누는데 많은 경우에 있지요. 그런데 이 남자들은 양공주와 결혼할 생각은 없고 결국 단물만 빼먹고 우리를 배신한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사귀어 오다가 결국 끝장을 보고 나면 더 희망이 없으니까 살면 뭐하겠어요?”
그들은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하던 말라리아 예방약을 모아두었다가 자살용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