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 유래는?

[김원회의 性인류학] 노역장 떠난 남편 구했던 아내의 지혜

(사진=픽사베이)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녀가 깊은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그 뜻이 아니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기술자와 인부들을 모아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젊은 남녀가 결혼하고 신혼생활 사흘 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에 징용을 당하고 말았다. 일단 징용이 되면 그 일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신혼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는 터라 혼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여인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외딴집에 어느 날 석양 무렵에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다. 부역을 나간 남편의 나이쯤 되는 사내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지라 “여인네 혼자 살기 때문에 과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이 외딴집에 혼자 살고 있는듯한데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여인은 숨길 것도 없어서 그 간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여인이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노골적인 수작을 걸기 시작했고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은 여인과 실랑이가 거듭되자 사내는 더욱 안달이 났다.

 

“부인, 이렇게 과부처럼 살다가 늙는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돌아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기에 당신은 너무 젊고 예쁩니다. 내가 평생을 책임질 테니 우리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삽시다.”

 

그러면서 사내는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깊은 야밤 인적 없는 외딴집에서 여인 혼자서 절개를 지키겠다고 두 다리를 바짝 오므리고 힘을 다해 저항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여인은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겠다고 말한 뒤 한 가지 부탁이 있으니 들어 달라고 말했다.

 

여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 테니 어서 말하라”고 재촉했다.

 

“남편과는 결혼해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의 정의가 있는데 부역 장에 가서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해서 사람의 도리도 없이 그냥 당신을 따라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을 한 벌 싸 드릴 터이니 날이 밝는 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전해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을 받아다 달라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만나기 힘든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주는 마음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고 해도 마음이 가벼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저는 평생을 당신만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그 약속을 먼저 해주신다면 기꺼이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내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여인과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마음껏 나눈 후,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아침이 돼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사내는 단잠에서 깨었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얼굴이 빛나도록 예쁜 젊은 여인이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자기를 내려다보는데 잠결에 보아도 양귀비보다 더 예쁘게 보였다.

 

이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황홀감에 간밤의 피로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어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에서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남자의 봇짐 속에 챙겨 넣었다. 젊은 남자는 잠시도 여인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와서 평생을 여인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달리듯 걸었다.

 

길을 떠난 지 며칠 뒤 드디어 부역 장에 도착한 사내는 감독하는 관리를 찾아서 면회를 신청했다. 면회를 담당하는 관리에게 부역을 하는 사람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한 장의 글을 받아가야 한다는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하자 “부역자에게 옷을 갈아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며 부역자가 작업장 밖으로 나오면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옷을 갈아입을 동안 누군가 다른 사람이 교대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윽고 여인의 남편을 만난 사내는 옷 보따리를 건네주고는 옷을 갈아입을 동안 내가 공사장에 들어가 있을 테니 '빨리 이 옷을 갈아입고 편지를 한 장 써서 돌아오시오'하고, 별 생각 없이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받은 옷 속에서 한 장의 편지가 떨어졌다.

 

“당신의 아내 여원이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당신을 공사장에서 빼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내며 몸을 허락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룻밤 같이 자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옷을 갈아입는 즉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눈썹이 날리도록 달려 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시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없거나 허물을 탓하려 거든 그 남자와 다시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자신을 기약 없는 부역에서 빼내주기 위해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다니! 하지만 그런 일은 강물에 배 지나간 자리와 같아서 흔적도 남지 않는 건데, 당연히 그 일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평생 오순도순 사는 것이 낫지, 어느 바보가 평생 못나올지도 모르는 만리장성 공사장에 다시 들어가서 교대를 해주겠는가?

 

남편은 옷을 갈아입기가 바쁘게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갔다. 여인의 남편을 대신해 만리장성 공사장에 들어간 사내는 평생을 부역 장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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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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