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선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를 어떻게 처벌했나?

조선시대의 부정한 성범죄와 처벌

조선시대 춘화


조선시대에는 결혼 외의 성관계를 각각 화간(和姦), 조간(刁姦), 강간(强姦)으로 나누고, 제각기 다른 형을 적용했다.

 

화간은 남녀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를 말하며 장 80대로 처벌하되 간통한 여자에게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에 처하도록 했다. 장(杖)은 오형(五刑) 가운데 죄인의 볼기를 큰 형장으로 치던 형벌을 뜻한다.

 

조간은, 사전적 의미로는 ‘여자를 후려내어 통간하는 것’인데 화간이 은밀한 간통 행위를 지칭한다면 조간은 여자를 다른 장소로 데리고 다닐 만큼 공공연한 간통 행위를 의미하며 이는 장 100대에 처했다.

 

강간은 성폭행으로 간통과는 다른 의미인데 강간범은 교형(絞刑), 즉 교수형에 처했고, 강간 미수자는 장 100대, 유배 3000리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12세 이하의 소녀와의 간통은 비록 화간이라 할지라도 강간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혼인 전이나 혼인 후를 막론하고 합법적인 배우자 외의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모두 간통으로 간주하였다. 단지 미혼 남녀의 경우 기혼 남녀의 간통보다 처벌이 약간 더 가볍게 취급됐다.

 

영조 때 경상도 산청에서 일곱 살 여아가 아이를 낳은 괴변(怪變)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소금장수로 밝혀졌는데, 열두 살 이하의 아이와 간통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률에 따라 소금장수는 처벌을 받았고, 여아 역시 음기(陰氣)가 꽉 찬 괴물이라고 하여 죽였다.

 

노비와 양반 여자와의 간통의 경우 각각 장 80대, 90대였고, 양반 남자와 노비 간의 간통도 각각 장 70대, 80대로 규정돼 있긴 했지만 실제로 이에 대한 처벌 사례는 거의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당시의 지배계층이 오히려 피지배계층의 간통에 대해 엄격하게 형법을 적용하지 않았거나 묵인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주인이 노비(奴婢)나 노비의 딸을 원할 때 이를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심지어는 여자노비를 통해 자식을 낳아 노비를 늘리려고 겁탈(劫奪)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페루의 리나 메디나


참고로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엄마는 페루의 리나 메디나(Lina Medina·사진)로 1933년 만 5살 7개월 21일에 제왕절개로 아들을 분만한 경우이다. 만 네 살에 임신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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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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