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대학자들이 ‘성 유머집’ 냈다고?
육담(肉談)은 성기(性器), 성행위, 남녀 간의 관계 등을 소재로 해서 꾸며진 이야기들을 말한다. 중국 연변 조선족들은 지금도 육담을 ‘고기이야기’ 또는 쌍담이라 하는데, 이때의 고기는 ‘육(肉)을 유머러스하게 번역한 것인데, 이때 고기는 다름 아닌 사람의 ‘몸’을 뜻한다.
조선조 때 육담은 그 외설 농도에 따라 해서(楷書), 반행(半行), 초서(草書)라는 은어(隱語)로 구분했다. 서체에 비유한 것이다. 비교적 점잖은 것은 해서, 그저 잡스러운 정도면 반행, 아주 음란하면 초서가 된다.
조선 전기의 대학자 서거정은 《태평한화(太平閑話)》, 일명 《골계전(滑稽傳)》이라는 육담집을 썼다.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왕을 섬겼고 대제학, 좌찬성까지 지낸 이가 육담을 엮어 책으로 썼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 외에도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제집(私淑薺集)》,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화(蓂葉志話)》 등 문신들의 육담집들이 있다. 또 육담의 입담꾼으로서 소문난 사람들도 많았는데, 성종 때의 유청풍(兪淸風), 박명월(朴明月) 등과 한말의 정가소(鄭可笑), 정수동(鄭竪童) 등이 그들이다.
국문학의 대가라고 일컫는 송강(松江) 정철(鄭澈)마저 진한 음담시조를 지었으니 아래와 같다. 기생 진옥(眞玉)과의 대화조로 《근화악부(槿花樂府)》에 나온다.
정철: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내게 살 송곳이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진옥: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鍱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여기서 번옥은 인공으로 만든 옥, 섭철은 철을 만들 때 첫 쇳물로 만든 질 낮은 쇠를 말한다. 정철(正鐵)은 여러 과정을 거쳐서 만든 순도 높은 쇠를 가리키고, 송강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표현한다. 골풀무는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性器)를 은유하고 있다.
육담은 성에 관한 무지나 오해로 인하여 기이한 행위, 오류, 실수 등이 일어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해서 때로는 성교육 자료도 되고, 이성을 유혹하거나 성욕을 자극하며 성감을 고조시키는 소재로도 활용했다.
조선 때 육담에서 흔히 쓰던 용어들은 다양하다. 남자의 성기를 우리말로 자지, 연장, 그것, 좆, 물건, 거기라 했으며, 한자로는 남경(男莖), 양물(陽物), 양경(陽莖), 양도(陽道), 옥경(玉莖), 옥근(玉根), 신경(腎莖), 좌장지(坐藏之), 신(腎)이라 했다.
여자의 성기는 우리말로 보지, 밑, 또는 아래로, 한자말로는 음부(淫婦), 음문(陰門), 음호(陰戶), 국부(局部), 국소(局所), 소문(小門), 하문(下門), 옥문(玉門), 비추(苾芻), 보장지(步藏之), 목불지처(目不地處), 차마 보기 민망한 곳이라 했다. 좌장지와 보장지는 각각 ‘앉으면 감춰지고, 걸으면 감춰진다’에서 나왔다니 재미있는 표현이다.
성행위의 우리말은 씹, 밤일, 그것, 그일, 그짓이며, 한자어는 성교(性交), 육교(肉交), 방사(房事), 음사(陰事), 합궁(合宮), 범방(犯房), 행방(行房), 합환(合歡), 합금(合衾), 교합(交合), 접합(接合), 사통(私通) 등이다.
자지와 보지, 씹은 가장 보편적인 말인데, 천대를 받고 있다. 심지어는 국어사전에서도 정확하지 않은 뜻과 함께 비속어로 소개되고 있다. 2021년의 대한민국은 조선조보다 성에서 열린 사회가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