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용어 순화에 대한 단상
십년도 더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외국의 한 사창가에서 우리나라 여성 80여명이 적발되었는데, 대부분이 자진해서 한 일이라는 뉴스에 몹시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강의하러 인구 5만도 안 되는 일본의 소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한국인 술집이 여섯 군데나 있다고 했다. 물론 자유롭게 2차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이다.
나라 안에서의 단속이 심해서 풍선효과를 일으킨 결과라고는 하지만 그게 왜 우리나라이어야 했나? 무엇보다도 매춘이 구걸보다도 못한 자존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간단없이 교육시켰어야 했어야 했다. 과거 전쟁이나 가난의 시절, 생계의 한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했던 여인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불에 이른 지금에까지 대표적인 매춘국가로 외국에서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 해묵은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도 SNS 등에 친구요청을 하거나 댓글로 매춘광고를 올리는 여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용어를 너무 순화시킨 것도 한몫을 했다고 본다. 과거에는 이런 직업에 대해 갈보(蝎甫)라는 용어를 썼다. 그렇게 나쁜 말도 아니었다. 빈대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입에 올리기조차 힘들어졌다. 또 매춘부, 창녀 대신 쓰는‘성매매 피해여성’이란 용어는 성을 파는 사람들은 피해자일 뿐이고, 그들을 찾아 온 고객들이 가해자자라는 의미를 풍기고 있다. 그렇다면 '성매매피해남성'은 어떻게 취급되어야 하나?
이런 고상한(?) 용어가 젊은이들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줬을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시‘원조교제’라는 그럴듯한 용어가 매춘을 마치 학업을 계속하기 위한 아르바이트쯤으로 생각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만일 과거에 쓰던 거북하다고 생각하는 용어들을 계속 쓰는 것이 매춘남녀의 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백 년 아니 천 년을 조상 때부터 써오던 우리말을 ‘비속어’운운 하면서 사어화 시킬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한 세대만 지나도 가치는 변하는데 제발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정신병자들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