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성종 때 머슴이었던 막산(莫山)이 자기의 옛 마님(仲非)과 동거하다 발각이 됐다. 원래 마님은 우의정까지 지냈던 강순(康純)의 아내였지만 남편이 남이장군 역모 사건에 억울하게 연류 되어 참형을 당한 후 남편을 고발한 유자광의 여종의 신분으로 살던 터였다.
이제 양반으로 살 수가 없게 된 마님은 그나마 사랑하게 된 막산과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녀는 막산의 본처를 매로 때려 쫓아내고 자기가 그 집으로 들어갔다. 상민들은 결혼식 없이 그저 같이 사는 것이 당시의 풍속이었다.
하지만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양반들은 이 여성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사헌부 관리들은 이 사건을 국왕에게 보고하면서 요점을 이렇게 간추렸다. “그 여인은 음탕하고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막산과의 첫 관계에서 전혀 반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윤리를 땅에 떨어뜨렸으므로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형법에 따라 그 여인과 막산의 목을 베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풍속을 바로잡으소서.” 그렇게 그들은 불귀의 객이 된다(성종 2년 3월17일).
소리를 높이던 그들 양반들은 그러나 어떻게 살았을까? ‘내가 하면 연애, 남이 하면 스캔들’, 아니 시쳇말로 ‘내로남불’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