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 돌 던져라
옛날의 궁녀는 왕의 여인들이었고 그들의 간통은 죽음이었다. 남녀 모두 사형이었는데 특히 여자는 ‘부대시 참형’이라 하여 바로 목을 베어 죽였다. 다른 사형수들은 대개 춘분이나 추분 때까지 기다려 줬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민담집 ‘금계필담’에 수록되어 있는 다음 이야기가 더 빛이 난다.
어느 날 밤, 성종은 내시 한 명만 데리고 홍문관을 시찰했다. 그곳에서는 숙직 중인 조위란 선비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성종이 문을 열려는 순간, 그 방의 뒷문을 열고 얼른 들어가는 궁녀가 있었다. ‘저는 평소 선비님을 늘 사모했습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조위가 완강히 거부하자, 궁녀는 칼을 꺼내 자살을 하려 했다. 조위는 할 수 없이 궁녀를 끌어안았다. 방안에서는 불이 꺼졌고, 남녀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조위가 이를 자복하며 사형을 자청하자 성종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를 덮어준다.
국법은 엄해도 예외는 있었다. 그 외에도 성 관련 사건들을 왕이 재량에 따라 달리 처리한 경우는 하도 많다. 인재를 잃기 싫었고, 성적 욕구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약점인가를 통치자도 알았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의 ‘성사’, 즉 성의 역사가 있다. 내가 언제 성에 눈을 떴으며, 그 욕구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남들이 모르는 크고 작은 역사들이, 어쩌면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비밀들이 엄청나게 있다는 얘기다. 그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지식인을 자처하는 우리들은 최소한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만큼은 돼야 할 것이다. 작금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적 약점을 대서특필하는 매스컴이나 이들에게 수없이 돌을 던지는 국민들을 보면서 ‘이러다가는 우리가 하늘의 벌을 받을 것’ 같은 걱정마저 든다. 성적 약점은 위로는 왕으로부터 아래로는 걸인에 이르기까지 다 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