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홀린 여인, 어우동
어우동은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의 손주 며느리였다. 조선조 스캔들의 대명사 같은 그녀는 근친상간도 여러 번 했다. 세종의 손자인 이난, 팔촌 시아주버니가 되는 이기와도 잠자리를 같이했다.
그녀는 마음에 든 사내에게 자신의 이름을 문신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는데, 전의감 생도였던 박강창은 팔뚝에, 서리 감의동은 가슴에 ‘어우동’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역사 속에서 자신과 통정한 상대에게 무슨 징표를 남기려 한 경우들이 많았던 것은 흥미롭다. 옷이나 몸에 먹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는 요즈음으로 치면 ‘싸인’을 받는 것이 되므로 애교로 볼 수 있지만, 문신을 남기거나 상대의 이를 뽑아 영원한 흔적을 남긴 경우들도 적지 않다. 고전 산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배비장전’에 이를 빼서 기생에게 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것도 한때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녀로 인해 신세를 망친 사내 가운데는 병조판서 어유소, 직제학 노공필, 아전 오종년 등을 비롯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름만도 은장이, 방산수, 수산수, 박강창, 이근지, 이승언, 홍찬, 감의향, 지거비, 어유소, 김휘 등 수도 없다.
성종은 그녀에게 사약을 내렸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사면되어 풀려났다. 그녀에게는 번좌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성종은 다른 간통 사건도 엄중히 처벌했으며, 과부의 재가(再嫁)마저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