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성(性) 의식
성범죄를 마치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큰 오해다. 지금부터 약 80년 전 우리나라의 사회를 잠깐 돌아본다.
1930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살인범 100명 중 남자가 53명, 여자가 47명으로 당시 여자 살인범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여성 47명 중 31명이 남편을 살해한 경우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애정행각에 방해가 되는 나이 어린 남편을 죽인 경우들이 많아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조혼풍습에 유교적 가치관의 붕괴가 원인이라고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정폭력이나 심한 시집살이에 대한 반감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여자들이 대부분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다.
1924년 스무 살의 여인 김정필이 정부와 짜고 열일곱 살의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의 신문은 ‘독살미인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그 후부터 범죄에 연루된 여자들을 덮어놓고 미인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음은 일제 강점기 때 화가이자 작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었던 나혜석의 글인데 음미하시기 바란다. 지금에 읽어도 놀라운 데가 있다.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것과 같이 임의용지(任意用志)로 할 것이오, 결코 마음의 구속을 받을 것이 아니다. 그럼으로 유래(由來) 정조 관념을 여자에게 한해 요구해 왔으나 남자도 일반일 것 같다. 왕왕 우리는 이 정조를 고수하기 위해 나오는 웃음을 참고 끓는 피를 누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한다. 이 어이한 모순이냐. 그럼으로 우리 해방은 정조의 해방부터 할 것이니 좀 더 정조가 극도로 문란해졌다가 다시 정조를 고수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여자도 이것, 저것 다 맛보아 가지고 고정해지는 것이 위험성이 없고 순서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