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성결혼
1932년 6월 잡지 ‘여인’의 창간호에는 남편의 무관심과 이혼으로 오랫동안 독수공방한 두 여인이 연애 끝에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동성의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서 생긴 넌센스’였는데, 이들이 결혼신고를 했는지는 언급이 없었다. 정순임 씨가 신랑이 되고 장경희 씨가 색시가 되어서 조선 고래식(古來式) 예복을 입고 요릿집에서 식을 올렸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최초의 동성결혼식을 2013년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승환이 올렸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남자 최초로 바꿔야 할 것이다. 여자들의 최초는 이미 81년 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 남녀 사이의 연애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는데, 나이 차가 많거나 또는 노골적으로 연애한다고 말하기가 거북할 때는 서로 S 오빠, S 누이, 또는 S 동생 하면서 만나기도 했었다. 아직도 동성애자들의 소위 ‘커밍아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1930년대에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대수롭지 않게 자기에게 동성연애하는 학생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가부장제의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잘 안 되던 여학생들에게 ‘말이 통하는 사랑하는 ‘동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성학적 의미의 여자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없을 때는 보고 싶고, 맛있는 게 있으면 갖다 주고 싶고, 학교에 가서 그 애를 만나볼 생각을 하면 기뻤다’고 하니, 가히 그 감정은 동성애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때로는 실에 먹물을 칠하고 바늘로 팔뚝부위 같은 데에 문신을 하면서 평생 잊지 말자고 맹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마 당시의 일본문화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