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금애기(삼신할머니)의 탄생
당금애기는 삼신(三神)할머니를 뜻하는데, 굿 설화 중에 나오는 인물의 하나이다. 예전에 마을의 안녕과 태평이나 풍요를 위하여 행하여지던 굿에서 구연(口演)되던 내용이므로 역사의 한 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 고대의 성 풍습이나 담론을 부분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만 간단히 소개한다.
한 때 무당들은 제사를 주재하고 정치를 하는 통치자의 기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되면서 제(祭)와 정(政)이 분리되었다. 무당의 기록은 고조선 때부터 있으며, 그 후 수천 년간 궁으로부터 민가에까지 우리나라에서 뿌리 깊게 이어졌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동네 어디에선가 굿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당금애기는 양가집 규수로 부모와 일곱 오라버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모두 출타하고 혼자 집에 있는데, 한 스님이 찾아온다. 그녀는 깊은 규중에 찾아온 그를 신기하게 여긴다. 스님이 시주를 청하자 쌀을 주었는데, 스님이 미리 바랑 밑에 구멍을 내어놔 쌀이 땅에 떨어지게 했다.
스님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쌀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며 뒷동산에서 꺾어온 버드나무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쌀을 옮기게 했는데, 그러는 동안 날이 저문다. 함께 밤을 새우게 된 스님은 당금애기가 중 남편을 얻을 팔자라고 설득시켜 기어이 연분을 맺는다.
다음날 아침 스님은 쌀 세 낱을 주고 떠났고 당금애기는 임신을 한다. 처녀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오라버니들은 당금애기를 죽이려 했지만 어머니의 간청으로 간신히 죽음을 모면하고 뒷산에 버려진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 아들 셋을 낳았다. 그 후 어머니가 죽은 딸의 시신이라도 거두려고 찾아가보니 당금애기는 아들 셋과 함께 잘 지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뻐하면서 당금애기와 세 아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세 아들은 장성하여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서당의 친구들이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자 아버지의 존재를 묻는다. 할 수 없이 당금애기는 박 씨를 심어 줄기가 뻗는 대로 세존(世尊)을 찾아간다. 세존을 만나 세 아들은 친자 확인을 했고, 당금애기는 삼신할머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