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접금기(交接禁忌)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병(丙), 정(丁)일, 보름과 초하루,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 오는 날, 안개가 자욱하거나 천둥·번개가 칠 때, 매우 춥거나 더울 때, 일식과 월식 때, 지진이 있을 때 그리고 임신 중에는 남녀교접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만일 이를 어기면 남자는 100배나 신명(身命)에 손상을 입고 여자는 병을 얻으며, 자식을 낳아도 반드시 우둔하거나 바보천치가 된다는 것이다. 매우 비과학적인 이야기다. 혹시 가족계획에는 좀 도움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늙으면 하지 말라는 말이 없으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시기에 이창정이 쓴 수양총서(壽養叢書)에는 성관계에서 금해야 할 경우를 11가지 들고 있다. 추위와 더위가 심할 때, 배불리 먹었을 때, 술에 취했을 때, 기쁨과 노여움이 가라앉지 않았을 때, 병이 아직 낫지 않았을 때, 먼 길을 걸어 피곤할 때, 임금의 행차 중에나 외출했을 때, 대소변을 막 보았을 때, 막 목욕을 마쳤을 때, 여자가 생리할 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억지로 할 때로 이런 경우는 모두 사람의 기(氣)를 어지럽히고, 심력(心力)을 부족하게 만들고, 온몸을 허하고 야위게 만들어 온갖 병이 나게 하니,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예전엔 해와 달, 별 아래서나, 성황당이나 절에서, 그리고 부엌이나 뒷간 근처, 무덤이나 시신, 관 옆에서는 모두 성관계를 안 했다. 사람의 정신을 손상시키고, 자식을 낳아도 불구자가 될까 두려워서다. 항문성교, 구강성교와 같은 성교 방식에 대한 기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금기들은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성을 남성의 정(精)을 소모시키는 존재로 본 것이다. 다음은 동의보감에 있는 정에 대한 설명이다. ‘정은 가장 좋으며 지극히 보배로운 것이다. 남자의 정은 가장 귀한 것이지만 그 양은 매우 적어서 온몸의 정을 다 합하여야 모두 한 되 여섯 홉이 된다. 이것은 남자가 16세까지 정을 배출하지 않았을 때의 분량으로, 한 근의 무게가 됨을 말한다. 정을 쌓아 가득히 채우면 석 되가 되고, 정을 손상하거나 잃으면 한 되가 채 안 된다. 정(精)과 기(氣)는 서로를 길러주는데, 기가 모이면 정이 가득하게 되고 정이 가득하면 기가 왕성하게 된다.’
현대의 개념으로 정을 정액(精液)으로 보았다면 매우 황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