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혜공왕의 성도착증
우리나라 역사에 최초의 동성애자였던 왕은 신라 36대 혜공왕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 이전에는 이와 유사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혜공왕은 여덟 살인 765년 왕위에 올랐는데, 어머니인 만월부인이 대부분의 기간을 섭정했다. 얼굴이 곱고 여자 옷을 즐겨 입었으며,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하고 주로 궁녀들과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따라서 혜공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성복장성도착증(異性服裝性倒錯症, transvestism)의 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성의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더 선호하는 성도착증의 하나다. 보통 10세 이전부터 시작하며 남자가 많은데, 트랜스젠더나 트랜스섹슈얼과 달리 자기의 성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다. 연령과 관계없고, 종교와 무관하며, 교육수준 비교적 높고, 인간관계 및 부모 관계 원만하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다. 대부분 이성애자이지만 동성애의 빈도는 약간 높다.
왕의 직위에 있으면서 여자처럼 꾸미고 놀기에 열중하다 보니, 그가 원래 여자인데 남자로 태어났으므로 신라에 불운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아들을 몹시도 원했던 경덕왕이 표훈도사를 시켜 옥황상제에게 빌어 여자로 태어날 아이가 남자로 성이 바뀐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780년에 김지정의 난이 일어났을 때 혜공왕이 난리과정에서 처형당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혜공왕이 여자 같이 행동해서이거나 조정에서 동성애자 왕을 용납할 수 없어서 왕을 살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권력다툼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김지정의 난을 진압한 김양상이 무열왕계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스스로 즉위하여 37대 선덕왕이 되었다. 그는 사다함의 증손이며 혜공왕에게는 외숙이 되는데, 그가 혜공왕을 죽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혜공왕 이후 신라 왕실은 점차 기력을 잃고 쇠퇴일로를 걸으며, 지방권력과 장보고 같은 권신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방탕과 황음의 만연으로 표현되는 소위 하대(下代) 신라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