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의 앞뒤가 닳아버린 까닭

'열녀 함양 박씨' 의 실제 인물은 남편의 3년 상을 마치고 자결하였으며, 그녀의 정녀비가 있다.


제나라 사람이 ‘열녀는 두 사내를 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국대전에도 '다시 시집간 여자의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고 하였다. 이 법을 어찌 저 모든 평민들을 위해서 만들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시작된 이래 4백 년 동안 백성들은 오래오래 교화에 젖어 버렸다. 그래서 여자들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집안의 높낮음도 가리지 않으면서, 절개를 지키지 않는 과부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드디어 풍속이 되었으니, 옛날 이른바 '열녀'가 이제는 과부에게 있게 되었다.

 

박지원이 쓴 ‘열녀함양박씨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왜 조선조 여자라고 성욕이 없었겠나? 재가도 못 하고 독신으로 평생 수절을 해야 했던 조선 과부의 심경을 쓴 이 책의 내용을 줄여봤다.

 

(전략) 과부의 두 아들은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형제는 어떤 사람의 벼슬길을 막을 방도를 어머니 앞에서 의논한다. 그 어머니가 연유를 묻자, ‘그의 선조 중 과부가 된 부인이 있었는데,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품속에서 엽전 한 닢을 꺼내어 보여준다. 아무런 문양도 글자도 윤곽도 남아 있지 않은, 양면이 모두 닳아 편평해진 엽전, 소위 ‘인고전’이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네 어미가 죽음을 참아온 증거다. 과부라는 것은 외로운 인생이라, 슬프고 서러운 감정이 끊이지를 않는다. 또 혈기가 때에 따라 왕성하니, 과부라 하여 어찌 정욕이 없겠느냐. (중략) 그럴 때마다 나는 방안에 이 동전을 굴렸는데, 이 동그란 것이 한번 굴리면 어두운 방 안 어딘가에 굴러가더구나. 그것을 더듬어 온 방 안을 찾고, 또 굴려서 온 방 안을 찾는 것을 여섯 번 정도 반복하면 날이 새고는 했었지. 그렇게 굴리는 사이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었고, 또 10년을 그렇게 굴리고 나니 닷새에 한 번, 혹은 열흘에 한 번 굴릴 정도로 그 횟수가 줄어들었단다. 지금 나는 혈기가 이미 쇠해 이 동전을 굴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2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잘 싸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 동전이 고맙기도 하고, 또 스스로 깨우치기 위함이다.’ 말을 끝내고 어머니와 아들들이 서로 붙잡고 통곡하였다.

 

그런데 열녀 함양 박 씨의 실제 인물은 남편의 3년 상을 마치고 자살하여, 그녀의 정녀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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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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