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妓生)의 기원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가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굳이 기록에 의존한다면 신라의 원화(源花)가 그 시작이라고 본다.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알아듣는 꽃’, 즉 기생을 의미한다. 갑오개혁 이전에는 여인들을 교육시키지 않았으므로 천민 출신이었지만 오직 기생들만이 남자들의 말 상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흥왕이 인재를 뽑기 위해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라는 두 여성을 원화로 삼아 3백여 명의 젊은 여자들을 거느리게 했었는데, 이들이 서로 미모를 질투하여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술을 먹인 후 강에 빠뜨려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그 일로 원화제도는 폐지되었는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들을 후의 기생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고구려의 소위 유녀(遊女)나 백제의 '꽃쟁취'도 어쩌면 남자들의 노리개 역할을 하던 직업으로 기생의 전신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생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호칭이다. 지난날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나 춤 등으로 흥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를 일컫는 말로 여악, 예기 등 호칭도 다양하고 분류도 복잡해지는데 자세한 것은 뒤로 미루고 우선 그 시작만 아주 간단히 살펴본다.
김유신이 말목을 자르는 바람에 유명해진 천관녀는 확실히 후대에 기생과 같은 유의 직업이었다. 원래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무녀(巫女)들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막강한 세력을 소유함은 물론 왕이나 왕족과 성적 의식도 시행하던 직업이었다. 그러나 종교가 생기면서 이들은 몰락한다. 이들을 역사에서 창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신라 역시 612년 왕실이 무속신앙을 버리고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그들도 왕실의 기녀(妓女) 쯤으로 강등되어 왕족의 품에나 안겨야 하는 여인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천관녀(天官女), 그녀의 이름이 강한 암시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