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부터 키스했을까?
양치질이 도입되기 전에는 키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는데, 키스는 고대로부터 있었다. 기원전 1,110년경 아시리아에는 여자의 승낙 없이 키스를 하면 남자의 아랫입술을 자른다는 법률이 있었다.
입술은 신경이 매우 예민할 뿐 아니라 의복으로 가리지 않고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유일한 점막이며 성감대인데, 인간이 이를 외면했을 리가 없다. 많은 동물들 중에 하필 인간만 입의 바깥 부분이 외부로 노출되게 되어 있는 점도 음미할 부분이다.
일본 에도시대의 춘화들에서 보면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유명 풍속 화가들의 그림 중에는 없지만 아마추어들이 그린 민화에서는 더러 나온다. 옹녀가 사내를 유혹할 때 썼다는 옹녀분탕질 중에는 눈흘레, 손흘레, 입맞치, 젖쥔치, 거드모리 등이 있다. 여기서 눈흘레는 눈요기로 상대방과 성교하는 일을 상상함이고, 손요기는 손으로 하는 짓거리이며, 입맞치는 물론 입맞춤이다. 젖쥔치는 유방을 애무하는 행위이고, 거드모리는 옷을 걷어붙이고 급하게 하는 짓이다.
하긴 여사당패의 자탄가에 ‘내 입은 대폿집의 술잔인가, 이 잡놈도 빨아보고, 저 잡놈도 빨아보네’란 대목이 있으니 그 때도 그랬을 의심에 여지는 없다. 유랑극단 남사당패들의 한마당이 끝나면 짓궂은 남자들은 입에 동전을 물고 입을 내밀었다 한다. 그러면 여사당이 춤을 추며 가까이 와서 입으로 그 동전을 받아 물어 가곤 했다. 일종의 팁 형태의 ‘키스머니(kiss money)’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조의 풍습이라고 하지만 고려 때도 그랬을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혓바닥 아래 두 개의 구멍이 있는데 하나는 심기(心氣)와 통하고 하나는 신기(腎氣)와 통한다고 믿었다. 이 두 기운이 합쳐 침이 되는데 입을 맞춘다는 것은 침 속에 들어 있는 너와 나의 정기를 서로 나눈다는 뜻이 있었다.
키스를 ‘입알’이라고도 하고 키스하는 일을 ‘심알을 잇는다’고도 했다. 성과 관련된 순수 우리말엔 ‘공알’, ‘불알’을 비롯하여 ‘알’이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이 개국신화에 알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