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기우제(祈雨祭)
우리는 일찍부터 농경사회로 정착하여 살았지만, 농사일은 하늘만 쳐다봐야 했다. 오랜 가뭄으로 흉년이 걱정되면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고을 사또까지 기우제를 지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 그 성공률이 100%란 말이 있는데 우리도 거의 그랬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여성이 신과 대립하는 존재로 출현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으로서 기우를 담당하는 신인 남자가 땅인 여자에게 물을 뿌리게 하려면 남녀의 대립을 바탕으로 한 모욕(侮辱) 행위가 제격이었다고 생각한 듯하다.
기우제는 지방에 따라 별의별 습속이 다 있었다. 그냥 쌀 까부는 키를 씻기도 했지만, 청주, 춘천 지방에서는 아들을 못 낳는 여인네들만 골라서 키에 강물을 담아서 키 틈으로 새어 나오는 물을 온몸에 맞으며 맹렬한 비빌이 춤(속 고쟁이를 벗고 통치마를 돌려가며 추는 춤)을 추게 하였고, 부녀자에게 삿갓을 씌우거나 과부에게 솥뚜껑을 씌워놓고 물을 퍼붓기도 했다. 옥천지방에서는 할머니부터 며느리까지 3대 과부가 사는 집에 부녀자들이 모여 세 과부에게 솥뚜껑을 씌워놓고 둘러서서 물을 필사적으로 끼얹었다. 곡성, 옥구, 장성지방에서는 동네 부인들이 총동원되어 인근 동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눔으로써 비를 빌었다. 경주에서는 수십 명의 무녀(巫女)들을 모아놓고 머리에 버들가지로 만든 모자를 씌우고 음탕한 춤을 추게 하기도 했다.
이들은 여자가 음이므로 춘우(雲雨)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던 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