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자식 (귀태:鬼胎)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신라도 정절에 관한 규제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5대 진지왕이 도화(桃花)라는 한 유부녀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궁중으로 불러들여 접하려 했지만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이를 거부하였다. 한 여자가 두 남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왕은 ‘그렇다면 남편이 없으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는데, 도화가 그럴 수는 있다고 대답했다. 당시 남편에 대한 정절은 지켜도 사별한 과부 경우의 남자관계는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진지왕이 먼저 죽었다. 그리고 얼마 뒤 도화의 남편도 죽었는데, 약 열흘쯤 뒤에 진지왕의 혼(魂)이 도화의 방에 나타나 함께 자기를 원했고, 이때는 그녀도 이를 따랐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이 핑계 중에는 동물, 귀신, 또는 꿈에 나타난 남자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으므로 확실한 것은 본인만 알겠지만, 하여튼 도화는 이렇게 임신을 하여 비형(鼻荊)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를 귀태(鬼胎)라고 한다. 비형은 진평왕에 의하여 궁에서 자라게 되며, 후에 도깨비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인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귀태는 귀신의 자식이란 뜻이며, '잘못된 탄생'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