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곳에서나 매춘하던 시대
최근까지도 아무 곳에서나 매춘을 하는 소위 ‘떴다방’, ‘담요 부대’, ‘돗자리 아줌마’라는 것이 있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등산길에도, 훈련소 담 너머에도 하여튼 이런 영업이 될 만한 곳에는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 역사는 멀리 조선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들병이’는 주막에서 동이 술을 떼어다 길손들이 많은 길목에서 낱잔으로 팔면서 추파를 던지다가 몸을 파는 여성들을 말했다. 노류장화(路柳牆花) 즉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이라고도 했다.
이들 들병이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자들이라 대부분 은근히 손목을 잡는 남자를 따라갔고, 적극적으로 으슥한 산기슭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해의채(解衣債, 옷 벗은 대가)라 하여 그 대가를 받았다. 그들은 매춘여성 중에도 최하위급으로 ‘똥치’라고도 불렸다. 1989년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다.
그 밖에 직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통지기’ 또는 ‘반빗아치’라 하여 예전에, 반찬을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하녀가 밥통을 들고 거리에 서 있으면 한량패들이 수작을 걸어 쉽게 오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속담에 ‘통지기 오입이 제일이다’라는 것도 있다. 이들도 약간의 돈을 챙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