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패륜호색
우리는 역사에서 패륜호색 군주라 하면 제일 먼저 연산군을 떠올린다. 그러나 고려 때도 이에 뒤질세라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왕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28대 충혜왕이다. 공민왕의 형이기도 하다. 어쩌면 연산군을 훨씬 능가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연산군은 세자 시절에는 평범했는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어머니 때문에 비뚤어졌다고나 하지만, 충혜왕은 어린 세자 시절부터 막장이었다. 절 지붕 위의 새를 잡는다고 절에 불을 지르기도 했고, 불량배들과 어울려 여자 겁탈하기를 밥 먹듯 했다.
그는 성품이 호협하고 주색을 좋아했으며, 놀이와 사냥에 탐닉했다. 남의 처나 첩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으면 누구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후궁으로 들인 여인들이 100명이 넘었다.
선왕인 충숙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휘령공주(徽寧公主)를 겁탈한다. 그것도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자 신하 송명리 등을 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잡은 다음 입을 틀어막고 강간을 했다. 결국, 원나라 공주였던 그녀가 이 일을 원에 일러바쳐 후에 하야케 되고 귀양길에서 나이 서른에 객사한다. 불우한 왕에게 쓰는 혜(惠)의 시호를 받았다.
그는 또 다른 아버지의 여인이었던 수비 권 씨도 겁탈했다. 그녀는 몇 달 뒤 사망했는데, 수치심으로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해에 사망한 부친 권렴이 39세였던 것으로 보아 그녀는 매우 어린 나이었던 것 같다.
성학(性學)에는 증오성(憎惡性, hate sex)이니 복수성(復讐性, revenge sex)이라는 게 있어 미워하거나 복수할 목적으로 성교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부자지간의 매우 심했던 갈등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보기 힘든 사건들이었음은 틀림없다. 충렬왕 때 최세연이란 사람은 자기의 처가 워낙 사납고 질투가 심하자 스스로 거세(去勢)하여 환관이 되었는데, 이 또한 다른 형태의 복수성이다. 즉, 미운 아내와 헤어지는 대신 이런 형태로 복수한 것이다.
충혜왕은 외숙모인 외숙 홍융의 처, 장인 홍탁의 후처 황 씨도 불러 간음했다. 황 씨는 이 때문에 임질에 걸렸는데, 충혜왕은 승려 복산을 시켜 그녀의 임질을 치료토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피해 많은 백성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피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요즈음 식으로 치면 이민을 갔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