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조론(新貞操論)
지금부터 90년 전 어느 한 조선 신여성의 성 가치관을 논평 없이 소개한다.
김원주는 ‘일엽(一葉)’으로 더 유명한데, 일제강점기의 여성운동가, 언론인, 시인이자 불교 승려이며, 수필가였다. 필명 일엽은 일본 유학 중에 만난 친구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창간해 여성해방을 부르짖고, 동인지 <폐허>의 문학동인으로도 활동했다. 이화학당을 거쳐 도쿄 영화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한국 최초의 여자 일본 유학생이다.
그녀는 정조는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있다는 ‘신정조론’을 내세웠고, 육체적 순결의 무의미함을 주장했다. 혼전 혹은 연애 전의 순결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연애와 결혼할 동안 상대방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녀는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정신적으로, 남성이라는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여인이라면 언제나 처녀로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여인을 인정할 수 있는 남자라야 새로운 삶, 새 생활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여인,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 하여 자신이 신정조론을 주장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1927년 1월 8일 자 조선일보에 ‘나의 정조관’이란 제목으로 실었던 그녀의 글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몇 사람의 이성과 관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새 생활을 창조할 만한 건전한 정신을 가진 남녀로서 과거를 일체 자기 기억에서 씻어 버리고 단순하고 깨끗한 사랑을 새 상대자에게 바칠 수가 있다면 그 남녀야말로 이지러지지 않을 정조를 가진 남녀라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무한한 사랑이 즉 정조라 하면 정조관념만이 더럽힘을 받는 제한된 감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조는 결코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고 단지 사랑을 백열(白熱)화시키는 연애의식의 최고 절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일생을 두고 이러한 연애의식의 최고 절정(대상이 바뀌고 아니 바뀌는 것은 상관없음)에서만 항상 살려고 하는 것이 정조관념이 굳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처녀성이라 함은 이성을 대할 때 낯을 숙이고 수줍어만 하는 어리석은 태도가 아니라 정조에 대한 무한한 권위, 다시 말하면 자기는 언제든지 태도가 이지러지지 않은 새로운 영육(靈肉)의 소유자라고 자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