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의 피임
왕건이 아직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견훤을 공략하고자 나주에 갔었다. 어느 날 길을 잃고 단신 시골길을 달리다가 어느 샘가에서 한 처녀를 만나 물을 달라고 했다. 이 아가씨는 우물물을 떠서 그 위에 버들잎 몇 잎을 올려 말을 타고 있는 사내에게 건넸다. 목이 매우 말랐던 그는 이를 보고 화가 나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몹시 목이 마를 때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천천히 드시라는 뜻으로 그랬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너무 귀여운 생각이든 왕건은 그녀를 데리고 인근의 빈집으로 데려가 바닥에 가마니를 깔고 관계를 맺었다. 장래에 큰 야망을 품고 있던 왕건은 임신을 피하고자 가마니 위에 질외사정을 하고 일을 마쳤다. 그러나 사내의 비범함을 이미 깨달은 여인은 얼른 일어나 바닥에 흘려진 정액을 마셨고, 기어이 임신을 하게 된다. 세종 때 쓰인 《고려사》에 있는 얘긴데 물론 자기 질에 넣은 것을 마셨다고 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고려사》가 편찬된 조선 전기 학자들의 성 지식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질외사정을 하면 피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정액이 상온에 노출됐다가도 곧바로 몸에 들어가면 임신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액을 먹어도 임신이 된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물론 질을 표현할 수 없어 먹었다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정액을 먹는 것을 자연스레 표기한 것으로 봐서 오럴섹스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집안이 한미(寒微)했던 이 오(吳) 씨 처녀는 왕건의 29명의 부인 중 두 번째인 장화왕후가 되며,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후에 2대 왕인 혜종인데, 얼굴에 돗자리 무늬 같은 흉터가 있어서 별명이 ‘주름살 임금님’, ‘돗자리 임금님’이었다고 한다. 몸도 쇠약해서 병이 떠날 날이 없었다고 하며, 34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버렸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혜(惠)자가 들어가는 임금들은 대체로 몸이 약하거나 자식이 없는 경우들이다.
질외사정은 구약 창세기의 오난(Onan)이 과부 형수와 관계 도중 피임목적으로 행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인류가 일찍부터 알고 있는 피임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에 구체적으로 기술되기는 이것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 ‘두레박에 버들잎 넣는 이야기’는 그 후에도 여러 번 나온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둘째부인 강 씨가 만날 때, 그리고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도망 다니던 이장곤(李長坤)과 고리 백정 천민의 딸 봉단과 만날 때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너무 예쁜 아내를 두었던 죄로 연산군에게 화를 입고 도망쳤던 그였지만 이장곤은 봉단을 끔찍이도 챙겼다. 그녀는 중종에 의해 양씨성의 정경부인으로 봉해지는데, 후에 임꺽정과 외사촌 간임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버들잎 이야기는 결국 지혜롭고 똑똑한 여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당시 자주 회자되던 이야기였다고 보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