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고개 설화
설화는 실제로 역사에 있었던 얘기는 아니다. 대부분 오랜 세월 민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들로 혹은 실화가 와전(訛傳)된 것도 있고, 혹은 아이들에게 권선징악(勸善懲惡)용으로 재미있게 만들어 들려주던 소위 ‘옛날이야기’들일 수도 있으나 당시 사회의 문화, 종교, 사상들과 무관하지 않아 살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설화는 크게 담론형, 교육형 및 풍속형의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다음은 교육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나기가 내리는 고갯길을 넘어가는 오누이가 있었다. 얇은 옷이 비에 젖자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에 누나의 드러난 몸매를 보게 된 남동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한 성적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동생은 그 자책감 때문에 멀찍이 쳐져서 걸어가다가 자신의 남근을 돌로 찍었고 피가 많이 나서 결국 죽었다.
동생이 뒤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낀 누이는 죽은 동생을 발견하고 그 경위를 알게 된다. 사랑하는 남동생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앞에 누이는 어쩔 줄 모른다. ‘그게 뭐라고, 차라리 한 번 달래나 보지’를 연발하며 울었다. 그로부터 그곳을 ‘달래고개’라 불렀다 한다. 근친상간의 모티브로 인간적 본능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살하는 남동생과 그의 죽음 앞에서 발해지는 누이의 절규가 윤리보다 선행하는 생명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다고도 하겠다.
‘달래나 보지.’ 이 한마디는 이야기꾼이나 듣는 이들의 욕망, 특히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한다. 여자의 정조(貞操)도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남자들의 마음에 심어주기 때문이다. 달래산은 지금도 거기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달래내길. 달천, 달래고개, 달래강, 달래산 등의 이름을 가진 강과 개울, 산과 고갯마루가 우리 땅 곳곳에 있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가 대단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공감 속에서 구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누이에 대한 욕정은 죄악이라는 근친상간(近親相姦) 금기가 그 주범이다. 그리스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예언자의 말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가, 버려졌기 때문에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극에 빠져 결국은 파멸에 이른다. 그런데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남매혼 신화’가 적지 않다. 일본의 창조 신화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남매 신이 인류를 퍼뜨리고 있고, 중국에서도 천상의 태백금성(太白金星)이 남매끼리 결혼하여 인류의 대를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