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화전(春花錢) 이야기

춘화전(春花錢). 가장 아래 있는 가장 작은 동전이 500원 짜리만한 크기다.


혹시 남녀가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4가지 체위로 양각된 엽전 모양의 금속을 보신 일이 있는지? 다른 한쪽 면에는 남녀 간의 애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듯한 '풍화설월(風花雪月)'이란 글귀가 대부분 새겨져 있다. 드물지만 춘화(春花), 용봉정상(龍鳳呈祥)’, 주원통보(周元通寶), 독전미인(獨專美人)의 글자들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외국인들은 유곽(遊廓) 토큰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유곽토큰(brothel token)이란 예로부터 창녀들의 삥땅을 방지하기 위하여 포주들이 손님에게 주던 소위 ‘입장권’ 같은 것이었는데,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시대의 것이, 그리고 동양에서는 중국의 한나라 때 것이 남아 있다. 유곽토큰 말고도 서양에서는 ‘섹스 코인’ 또는 ‘해피 코인’이라 하여 이런 외설적 코인을 수집하는 마니아들도 있다.

 

춘화전은 주로 중국(중국에서는 春錢이라함)과 우리나라에서 많이 써온 일종의 별전(別錢)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것은 매우 희귀하며, 간혹 동남아의 것들도 있다.

춘화전에 양각해 놓은 체위는 대체로 남성상위, 후배위, 좌위, 입위의 네 종류이지만 이를 돌리면서 보면 최고 16개의 체위가 된다는 설도 있으므로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풍화설월은 4계절의 좋은 경치, 좋은 풍광을 뜻하지만 ‘풍화’는 격정을 일구는 여자, ‘설월’은 차디찬 눈 속의 달은 매서운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는 힘으로서의 남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닫힌 사회에서 비밀스럽게 이뤄지는 금기 행위였던 성희를 밖으로 활짝 드러내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준 몇 가지 중의 하나였다. 춘화전 이외에도 판소리, 속담, 욕 등을 통해 적나라한 성적 표현들이 계승되었다고 본다.

 

부부유별의 철저한 유가사회였던 조선시대에도 이런 성희 교육이 있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특수한 종류의 별전들을 보면 이런 의문은 쉽게 사라질 것이다. 이들의 사용용도는 이론이 분분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시집가는 딸의 장롱 속에 넣어주어 성교육을 시켰다는 학계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궁중에서도 사용했다. 그 외 사대부가의 한량들이 은밀히 보고 즐기기 위해 갖고 다니거나 이를 지니고 있으면 불임이 치료되거나 발기부전 등 성기능장애에 좋다거나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생각해서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는 설도 있다. 일종의 ‘여우보지’ 효과를 기대했던 것 같다.

 

나는 40여 년간 개인적으로 이를 수집하여 백여 종을 갖고 있었는데, 매우 귀한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제주의 ‘건강과 성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한국 性史(김원회 저, 2015년, 253-254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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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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