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해지기
성학으로 보는 우리나라 출산율 - ⑲
남성혐오증(misandry)은 서양에서 1871년 처음 알려졌지만 그리 흔한 장애는 아니다. 인간은 원래 이성을 좋아하게 마련이니까 무관심도 넓은 의미로는 혐오로 본다. 대부분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무슨 남자와 불유쾌했던 경험이 있어서 생긴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싫다는 경우가 더 많다니 이상하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매스컴, 성폭력 예방교육, 성희롱 예방교육 등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자세히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너무나 불합리한 이런 일이 왜 하필 우리에게는 많을까? 또 여자에게 남성혐오증이 늘어나면 반사적으로 남자의 여성혐오증(misogyny)도 많아진다. 그리고 이건 섹스리스로 이어지며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되므로 꼭 고쳐야 할 장애들이다.
나는 이성에 호감을 느끼는 편이라 외국 특히 국제성학회 같은 델 가서 오랜만에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 악수가 아닌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자주 한다.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누가 성추행한다고 시비할 염려도 없다. 그런데 어떤 여자는 한동안 나를 놔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사를 오래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감정을 느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럴 땐 나도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좀 지루할 때도 있지만 약간이라도 밀치면 상대가 무안해 할까 봐 그렇게는 못 한다.
이렇게 둘이 같은 행동을 해도 한 사람에게는 인사가 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다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각자의 마음이 소화할 문제이므로 결코 내색하지 않는 것이 옳다. 남의 감정까지 시비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때 ‘좋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혹시 내가 남으로 인하여 기분이 좋았다고 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지금은 양성평등 시대다. 많은 경우 남녀가 같은 곳에서 같은 일들을 하고 있다. 이성의 냄새가 싫고, 목소리가 싫고, 존재가 싫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 사람 탓이다. 악수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탈감각을 했으면 좋겠다. 어쩌다 몸이 닿았다고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소위 성적 수치심을 심하게 느낀다면 정말 수치일 수 있다. 성적 환경이 아닌 특히 남들이 여럿 있거나 공공장소에서의 의도적이지 않은 접촉은 결코 성표현이 될 수 없다. 이성의 몸이 닿아 기분이 좋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이 아니다. 인간의 오감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성적 상태에 돌입하면 의식이 달라진다. 성은 별개의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라에서 열녀상을 받은 여인들 중에는 일본군이 손을 댔다고 자신의 손목이나 유방을 자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한국전쟁직후인 50년대 초는 정말 가난에 시달리던 때다. 어쩌다 성폭행을 당한 처녀들이 ‘이왕 버린 몸, 돈이나 벌자’며 매춘을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정말 지나간 옛 이야기들인데, 나는 여기서 성적 수치심을 봤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서구인들처럼 제발 자기 몸에 대해서 당당했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