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는데 왜 우울할까… 사랑 뒤 찾아오는 낯선 감정
5분~2시간 이어지는 '성교 후 불쾌감'… 호르몬·감정 해방 등 원인 여러 가설

성관계를 마친 뒤 이유 없이 슬픔이나 불안이 밀려오는 '성교 후 불쾌감(PCD·postcoital dysphoria)'을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 경우에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공영방송 WBUR은 2015년 학술지 '성의학(Sexual Medicine)'에 게재된 호주 퀸즐랜드공과대 로버트 슈바이처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보도했다. 성교 후 불쾌감은 관계 직후 우울감이나 불안, 초조함, 슬픔 등이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2시간까지 이어지는 현상으로, 눈물을 동반하기도 한다. 프랑스어로 '성교 후 슬픔'을 뜻하는 '포스트코이털 트리스테스'로도 불린다.
연구팀은 호주 대학과 페이스북을 통해 성생활을 하는 18세 이상 여대생 195명을 모집해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6%가 평생 한 번 이상 성교 후 불쾌감을 겪었다고 답했다. 최근 4주 동안 여러 차례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1%였다.
다만 연구팀은 참가자 대부분이 백인 이성애자 여성이고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된 만큼, 결과를 전체 인구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WBUR은 실제 증상을 겪는 자매의 사례도 소개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교사 킴(30)은 오르가슴을 느낄 때마다 1분가량 깊은 슬픔과 후회를 겪는다고 말했다. 성관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동생 레이철(27)은 12~13세 무렵부터 오르가슴 후 10~15분간 절망감에 시달려 왔다며, 그 감정을 "집에 있는데도 집이 그리운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두 사람 모두 결혼 생활은 행복하다고 밝혔다.
자매는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할 때도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오는 '수유 시 불쾌감(D-MER)'을 겪은 적이 있다. 관계 후 슬픔에 공식 명칭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 연구를 소개한 게시물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고 했다.
◆ 원인은 '복합적'… 호르몬·감정 해방 등 가설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호르몬 변화가 영향을 준다는 시각과, 성관계 후 강렬한 감정이 해소되면서 내면의 다른 감정까지 함께 표출된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과거의 상처가 일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주된 요인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슈바이처 교수는 안정적이고 애정 있는 관계에 있는 여성들 가운데서도 뚜렷한 의학적 원인 없이 관계 후 꾸준히 괴로움을 느끼는 집단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측 단계라는 전제하에, 성적 친밀감에 몰입할 때 사람은 일종의 '자아를 잃는' 경험을 하는데 자아가 취약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유 수유 시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례가 있어 호르몬과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심리학자이자 성 치료사인 주디 실버스타인은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성적 긴장이 쌓였다가 절정에서 한꺼번에 해소되는 과정에서 심리적 이유와 무관하게 눈물이나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절정에 이르지 못했을 때의 신체적 좌절감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사람들은 평소 방어적인 상태로 살아가다가 성관계로 긴장이 풀리는 순간 억눌러 온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슈바이처 교수는 증상을 겪는다면 우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파트너에게 감추거나 수치스러워하기보다 솔직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성적 경험을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기보다 개인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경험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연구팀은 향후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성관계 후 감정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를 개발하고, 대규모 온라인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박주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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