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커플이 애를 낳았다
얼마 전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온라인 매거진에 국내 레즈비언 커플의 출산 인터뷰가 실려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 부부는 정자를 기증받기 위해 멀리 벨기에까지 날아가, 인공수정으로 임신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동성애로 맺어진 모던 패밀리의 탄생, 그 서막일까요?
국내에서 레즈비언 커플로는 최초로 자녀를 임신해 화제가 됐던 김세연, 김규진 씨 부부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딸 출산 후 근황을 알렸는데요. 지난 2019년 뉴욕에서 정식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이후 규진 씨가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서 무기명·랜덤 방식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임신을 위해 그 먼 벨기에까지 간 이유는, 국내에서는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상 ‘정자 공여 시술은 법률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나와 있고, 대한민국은 아직 법적으로 동성혼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그랬던 거였습니다.
물론 국내에서 아직까지 임신을 위한 정자 구매는 불가하지만, 예외로 개인의 정자를 ‘선의로’ 기증받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기에 레즈비언 커플이 임신을 시도하기란 쉽지 않죠. 동성애에 비교적 관대한 편인 프랑스의 경우에도 레즈비언과 싱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자 기증을 허용하는 법안이 2021년에나 통과했으니, 레즈비언 커플이 정자를 구하기란 마치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어렵습니다. 다만 유럽에서도 벨기에와 스페인, 덴마크, 핀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웨덴 등의 국가에선 레즈비언과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자 기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세연, 규진 씨 커플도 벨기에까지 가서 벨기에 남성의 정자를 인공 수정 시술로 받았고, 혼혈아를 출산한 거였죠.
이들 부부의 평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이유도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동성 결혼을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명문대를 졸업 후 각자 외국계 대기업 재직, 전문직 의사로 종사 중이고, 결혼도 대형 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렀죠. 게다가 임신하고 나서 ‘대한민국 저출생 대책 간담회’라는 이름으로 베이비샤워까지 개최했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부부는 관광객의 혼인 신고를 허용하는 미국 뉴욕에서, 지인들이 있는 서울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법적 부부는 아닙니다. 혈연, 혼인 관계가 아닌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의 국회 통과도 아직 국내에선 요원하고요,
물론 이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나중에 ‘너네 엄마는 왜 두 명이야?’하는 질문을 듣게 될 수도 있겠죠. 이미 이들 부부가 인공 수정을 받기 전 벨기에 산부인과에서 심리상담 과정에서 고민했던 문제였는데, 이 부부는 딸에게 ‘이 세상엔 다양한 가족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합니다. 다들 엄마, 아빠와 같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가족의 형태는 아빠와만 사는 가족도 있고, 할머니와만 사는 가족이 있다고 말이죠.
한편 작년 2월 서울고법 재판부는 동성커플에게도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일까요? 분명한 건 이 사회의 모두가, 모든 가정이 다 똑같은 모습이라면 이렇게 재미있진 않을 거라는 것! 이 부부의 좌충우돌 육아기는 한겨레에 ‘김규진의 모모일기’로 연재 중입니다.
관리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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