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누드화는 말이 안 되나요?
며칠 전 영국 테이트 모던 갤러리 인스타그램에 낯선 남자의 올 누드화가 올라왔습니다. 이 피드는 불과 이틀 만에 좋아요 수가 무려 6만 5000개가 넘었고 댓글 수 역시 850건을 넘기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입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여류 화가 실비아 슬레이가 그린 <폴 로사노 리클라이닝>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남성의 성기며, 체모가 고스란히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느낌인데요. 독일 LWL 뮤지엄에서 11월 23일부터 개최되는 전시회 <Nudes>에서 이 그림은 포스터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림이 충격적이다’, ‘남자 누드라니 매우 낯설고 당황스럽다’, ‘페미니스트 화가의 작품답다’ 등 SNS 댓글 창의 반응도 뜨거운데요.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협업, 이번 전시를 주관하고 있는 LWL 뮤지엄이 밝힌 <누드> 전시회의 목적을 살펴보면, ‘누드의 전통과 예술사적 발전에 대한 다양한 작품을 공개함으로써, 알몸 여성과 알몸 남성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각과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 이번 전시회는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누드와 예술사적 발달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 방식을 재연하고, 누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성 정체성의 질문을 던집니다. 선보이는 누드 작품의 종류도 역사적인 작품에서, 사적인 작품, 현대적 누드 묘사, 초현실적인 몸, 연약한 누드 묘사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사실 누드의 어원을 살펴보면,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누드’의 정의를 ‘예술에서 표현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몸’이라고 했고, 프랜시스 보르젤로가 지은 <The Naked Nude>라는 책을 보면, ‘벌거벗는다(to be naked) 는 것은 옷이 벗겨진다는 뜻이며, 반면에 누드(Nude)라는 말은 교양 있는 용어로, 불편함을 함축하고 있지 않다.’고 구분 짓고 있습니다. 물론 누드화의 단골 소재로 남성을 제치고, 여성의 몸이 등장하게 된 것은 16세기 이태리 화가가 그린 <잠자는 비너스>를 발표하고부터! 그 전엔 그리스 아폴로 조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젊고 아름다운 남성이 주된 소재였죠. 이렇듯 역사적으로 한동안 다소곳이 수동적인 포즈를 취한 알몸의 여성을 그린 누드화가 미술 사조에서 보편적이 되면서, 알몸의 남성 누드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드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을 깬 사람이 있으니, 바로 사실주의 화가 실비아 슬레이(Sylvia Sleigh)가 그 주인공! 그녀는 남성 예술가들이 그린 누드 여성의 미술 역사적 전통을 뒤집어 그린, 감각적인 남성 누드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평생 남녀 모두를 동등하게 그렸던 그녀는 체모, 주름, 선탠 흔적 등과 같은 신체의 디테일을 가감 없이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여, 남녀 누드화를 보는 전형적인 시각에 도전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번 전시회 포스터에 쓰인, 뮤지션 폴 로사노의 누드 그림을 봐도 그렇습니다. 소파 위에 기대 누운 채 벌거벗은 모델의 요염한 포즈는 별다를 게 없지만, 문제는 그 성별이 남성이기 때문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입니다. 고전적인 여성 누드의 포즈와 시선처리를 그대로 남성에게 적용시켰을 뿐인데, 솔직히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낯설고 당황스럽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감상했던 여성 누드화의 포즈와 시선처리가 어쩌면 남성 관객을 위한 욕망의 반영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암튼 이번 전시는 지난 200년간 예술가들이 인간의 몸과 성(性)을 어떻게 표현해 왔는지 그 변천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에 흥미로운 이벤트임에 틀림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가들의 누드 작품에 대한 취향과 태도는 물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상까지도 알 수 있으니까요. 여전히 벌거벗은 남성의 누드화를 감상하기가 불편하신가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 참고로 컨템포러리 누드 아트를 표방하는 이번 전시는 2023년 11월 23일부터 2024년 4월 14일까지 독일 뮌스터에 위치한 LWL 뮤지엄에서 공식 관람 가능합니다. 좀 더 자세한 정보는 LWL 뮤지엄 페이스북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관리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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