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환자 50% 이상, 헤르페스 때문(연구)
입술에 보기 흉한 물집을 만드는 헤르페스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킬까?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를 보면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과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의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 1형’(HSV1)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최근 HSV1과 노인성 치매 사이의 인과 관계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역학·임상 자료가 영국의 한 원로 교수에 의해 집대성됐다.
영국 맨체스터대 루스 이츠하키 명예교수는 헤르페스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평생에 걸친 연구 결과와 150건 이상의 방대한 역학·임상 자료를 바탕으로 쓴 논문이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인체의 뉴런(신경세포)과 면역 세포에 평생 머물러 있다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물집을 만들고 재활성화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을 때까지 한번쯤은 HSV1에 감염된다.
맨체스터대에서 봉직하면서 HSV1과 알츠하미어병의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데 25년을 쏟은 이츠하키 명예교수에 따르면 HSV1는 알츠하이머병 사례의 50% 이상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이츠하키 교수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일종의 유전자 변이주인 ‘APOE-ε4’(아포지단백 ε4)의 보유자들에게서 입술의 물집이 더 자주 발생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녀는 “APOE-ε4 보유자들에게서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재활성화가 더 잦고, HSV1에 감염된 뇌세포에서 더 해롭다는 게 우리의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HSV1에 감염된 뇌세포는 피해를 축적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HSV1이 알츠하이머의 특징인 단백질 축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뉴런 사이에 플라크 (plaques)와 뉴런 안에 엉킴(tangles)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츠하키 명예교수는 “바이러스 DNA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사후 뇌 조직의 플라크 안에 매우 특이하게 자리잡고 있고, HSV1에 감염된 세포 배양에서도 플라크와 엉킴 현상을 보이는 주요 단백질이 쌓인다”고 밝혔다.
그녀는 “항바이러스 약물은 헤르페스 감염 증상이 심각한 환자들의 노인성 치매 발병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이 내용은 ‘노화 신경화학 최신연구’(Frontiers in Ageing Neuroscience)에 실렸다.
김영섭 기자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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