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트럼프 행정부 성별 규정 변경설에 과학자들도 반발
미국의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커뮤니티가 들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법률 개정으로 성별 판단 규정을 ‘출생 시의 생물학적 성’(생식기에 의해 결정된 불변의 상태)으로 축소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성별 판단 규정의 변경안은 정치적인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트랜스젠더들의 인권 보호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과학자들은 이 변경안에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미국 포모나대(Pomona College) 레이첼 레빈 부교수(생물학·신경과학)는 “성별 판단 규정의 변경안은 매우 부정확하고, 과학 특히 기초과학에는 일종의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성 발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해 21일(현지시간) 보도한 미국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의 메모에 따르면 보건복지 당국은 ‘분명하고,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고, 객관적이고 관리 가능한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 성에 대한 법적 판단 규정을 제시하는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잘못된 보도라고 말했으나, 유출된 문서에 대해선 논평을 거부했다.
출생 시의 (생물학적) 성에 따른 성별 판단 규정은 많은 생물학자들의 연구 결과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북미간성협회(Intersex Society of North America)의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 약 1,500명~ 2,000명에 한 명 꼴이 비정상적인 생식기를 갖고 태어난다. 간성(intersex)이란 완벽한 남성도 완벽한 여성도 아닌 생식기를 가진 경우를 말한다.
협회 측은 “그러나 통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미묘하고 변형된 해부학적 구조를 갖고 태어나며, 그들 중에는 뒤늦게까지 성징을 나타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성(sex)·성 정체성(gender identity)·성 발현(gender expression) 등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성을 ‘어떤 한 개인의 생식기 또는 유전적 구성에 바탕을 둔 고정적인 상태’로 좁게 규정하는 것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 배아는 고환 또는 난소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련의 생식샘으로 시작한다. 임신 약 8주에 SRY라는 Y염색체 위의 단일 유전자가 활성화하고, 고환이 될 생식샘에 메시지를 보낸다.
제 기능을 하는 SRY 유전자가 없을 경우 배아는 난소로 발달한다. 난소는 사춘기 때까지 호르몬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남녀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없는 생식기와 몸을 초래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제 기능을 발휘하는 Y염색체가 결핍됐을 경우 그 사람은 유전적으로는 남성이나, 생리적으로는 여성이다.
이와 관련, 레빈 부교수는 “성 정체성에는 단일한 답도, 단순한 답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성 성기를 갖고 태어난 일부 아기들은 여분의 X염색체를 보유하며 이른바 ‘클라인펠터 증후군’(성 염색체 이상에 의한 발달장애 증후군)이라는 질병을 앓는다.
또 ‘안드로젠 무감성 증후군’(AIS)을 앓는 사람의 경우에는 XY염색체를 갖고 있으나. 안드로젠과 결합하는 안드로젠 수용체를 발달시키지 못한다.
AIS를 갖고 태어난 아기는 여아일 경우 자궁경관이 없이 짧은 질만 갖고 태어날 수 있고, 남아일 경우에는 전부 또는 일부의 잠복 고환을 갖고 태어날 수 있다.
따라서 유전학과 성염색체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런 사람들을 배제할 우려가 있다고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멜리사 윌슨 세이레스 조교수(성염색체 진화·성 생물학)는 지적했다.
또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에 본부를 둔 비영리단체 ‘걱정하는 과학자연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22일 성명을 내고 성별 판단 규정의 변경안은 사이비과학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또 “보건복지부가 과학을 왜곡해 성에 대한 규정을 바꾸려는 것은 근거가 없고 잘못된 것”이라고 성토했다.
하버드대 의대 사리 라이스너 교수(역학)는 “한 사람의 성 정체성 또는 성 발현을 무시하면 트랜스젠더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사람들의 건강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태어날 때와 다른 성을 선택한 미국인은 약 1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영섭 기자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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