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데이팅 앱, 성병 확산의 새로운 원흉"
세계 최대의 데이팅 앱 ‘틴더’(Tinder)와 남성 동성애자 전용 데이팅 앱 ‘그라인더’(Grindr)가 에이즈 등 성병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주요 데이팅 앱은 자신들이 성병 증가에 일조했다는 보건전문가들의 인식과 언급에 반발했다.
201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보건당국은 전년도에 매독이 79%, 임질이 30%,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33% 각각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보건당국은 “이런 성병 발생률 증가는 국가적 추세의 일부이며, 익명으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온라인 데이팅 등 고위험성 행동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P)의 9월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의 매독·임질·클라미디아 등 성병 환자는 2백만 명 이상에 달한다. 사상 최고 누적치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틴더·그라인더·오케이큐피드 등 데이팅 사이트와 앱이 위험성 높은 성관계를 촉발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 사이트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것. 전문가들은 성병의 추적·예방 방식까지 바꿔야 할 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주요 데이팅 네트워크들이 성병 예방에 참여하길 원치도 않고, 자신들이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지도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UCLA) 제프리 클라우스너 교수(성병 연구)는 “데이팅 사이트들이 성병과 관련해 낙인찍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라인더와 틴더는 언급을 거부했다. 또 틴더는 웹사이트에 ‘데이팅 안전’ 섹션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위버·리프트 등 자동차 탑승 공유 앱이 새로운 규정과 문화적 적응을 요구하는 것처럼, 이들 데이팅 사이트도 성관계 방식을 뒤흔들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보건 분야 시민운동가들은 데이팅 사이트들도 이제 영향력을 인정하고, 성병 퇴치에 도움을 주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네소타대 연구팀이 커뮤니티 사이트 ‘크레이그리스트’의 개인 광고와 에이즈의 관련성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9~2008년 미국 33개 주에서 HIV 감염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크레이그리스트의 등장만으로 HIV 감염 사례가 16%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클라우스너 UCLA 교수는 “네바다 주에서는 지난해 기록적으로 많은 매독 환자가 새로 발생했는데 그 일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성관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네바다 주 보건부는 성병 환자들이 그라인더 등 데이팅 사이트·앱에서 파트너를 너무 쉽게 만났다는 사실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데이터는 성병과 데이팅 사이트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일 뿐이다.
볼스테이트대 주딘 레흐밀러 교수(성관계·심리학)는 “앱 이용자가 더 많은 성관계 파트너를 갖고 있는 등 성생활이 활발한 것으로 연구 결과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공중보건 분야의 비영리단체인 ‘미국 건강 신탁’(Trust for America’s Health)의 회장 겸 CEO 존 아우어바흐는 “앱을 통한 익명의 만남은 연락처 추적을 더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연락처 추적은 질병의 역학조사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에이즈건강재단 회장 마이클 와인스타인은 성관계 네트워크에서 질병 전파의 방식을 바꾸는 바람에 성병 감염이 더 쉬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앱이라는 폐쇄 공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병이 퍼지기 쉽다”며 “그래서 우리는 앱을 ‘디지털 목욕탕’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대형 데이팅 앱들은 성건강의 전선에서 훨씬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당국은 틴더·그라인더 등 주요 데이팅 네트워크들이 콘돔을 무료 배포하는 장소를 광고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들이 남성 성병 발생률 증가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간 보건단체들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무려 5,000만~1억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틴더·그라인더 등 사이트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성병에 대한 자료 수집, 파트너 알림, 콘돔 홍보, 성병 자가 테스트 및 각종 정보 배포에 데이팅 사이트들이 참여해 주길 바라고 있다.
에이즈건강재단은 데이팅 앱(틴더·그라인더)·성병의 이름과 함께 키스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을 보여주는 옥외 광고와 버스 광고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성병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틴더 측은 부당행위 중지명령으로 맞섰으나, 웹사이트에 건강안전 섹션을 추가하기로 합의한 뒤 2016년 1월 재단 측과 화해했다. 오케이큐피드 등 다른 주요 데이팅 앱들도 해당 사이트에 건강정보를 게시했다.
특히 다른 앱과 사이트들은 주요 데이팅 네트워크에 앞서 ‘안전한 섹스’를 촉진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 동성애자 소셜 네트워크인 ‘호넷’(Hornet)은 이용자들에게 프로필에 HIV 감염 여부를 표시하도록 허용했다.
즉 ‘음성, 음성 및 노출전예방법(PrEP) 시행 중, 양성, 불검출 양성, 모름’ 등 5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노출전예방법(PrEP)이란 ‘HIV 예방용 알약 복용 중’ 이라는 뜻이다.
호넷은 또 공중보건개입 방침을 도입했다. 이용자가 ‘음성’을 선택한 경우 마지막 성병 검사일을 공개하게 하고, 6개월 뒤 재검을 받으라고 상기시킨다.
또 다른 남성 동성애자 데이팅 앱인 ‘대디헌트’(Daddyhunt)는 민간 보건단체와 협력해 이용자가 온라인에 있을 경우 성병검사와 콘돔·PrEP 등 5가지 공중서비스 안내문이 팝업으로 뜨게 했다. 이 안내문은 2백만 이상 조회를 기록했다.
미국의 공공보건 그룹인 ‘건강한 온라인 사회 건설’(Building Healthy Online Communities)의 이사 댄 울파일러는 “이용자들이 성병 진단을 받았을 때 앱 전체의 파트너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통합 ‘파트너 알림’ 서비스를 워싱턴대와 함께 공동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계에서도 데이팅 앱의 성행에 따른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한 노력이 나름대로 이뤄지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한 클리닉은 성병 예방을 위해 위험한 환자들과 연결하는 일종의 ‘그라인더 프로파일’을 만들었다. 이 클리닉은 1년 안에 100명 이상의 신규 환자를 성병 검사 및 상담에 끌어 들이는 데 성공했다. 나이트클럽을 통한 전통적인 성병 환자 유치는 요즘엔 먹히지 않는다.
또 인디애나대 연구팀은 자가 테스트용 HIV 키트를 광고하기 위해 데이팅 앱 ‘그라인더’에 광고를 냈다. 연구의 주요저자인 라이너 로젠그렌 인디애나대 연구원(전염병 담당 의사)은 “HIV 자가 테스트는 그라인더 이용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검사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데이팅 앱이 공중보건에서 점점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김영섭 기자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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