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와 자지의 어원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 은 '연꽃 속 보물이여!' 이라는 뜻이다. (사진=shutterstock.com)


점잔 빼기로는 세계 최상급인 우리나라 신문에 ‘보지’를 활자화할 수 있을까? 지금 거의 불가능하지만, 한때 일간지 문화면에 유행처럼 등장했다.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를 소개하는 기사에서였다.

 

극작가 이브 엔슬러의 베스트셀러를 무대에 올린 이 연극은 위노나 라이더, 수전 서랜던, 우피 골드버그, 케이트 윈슬릿, 브룩 쉴즈, 귀네스 팰트로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주연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책이 먼저 소개됐는데, 한 신문의 책 소개 지면에 ‘보지의 독백이라고 할 만하다’는 글귀가 등장했다. 이 연극은 김지숙, 예지원, 이경미 3명이 주인공으로 초연했고 나중에 서주희의 모노드라마로 각색돼 연극계를 뒤흔들었다. 우리나라 신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연극의 독백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보지가 울긋불긋 난무했다. 한 신문은 제목에도 ‘보지’를 달았다. 이러는 사이에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부제가 ‘보지의 독백’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지의 독백’으로 번역한 것은 의도를 떠나 명백한 오역이다. 영어 ‘Vagina’는 질(膣). 보지는 ‘Vulva’다. 질은 아기가 들어서는 자궁의 입구부터 양쪽 소음순의 틈새까지를 가리키고, 보지는 생식기 언저리에 있는 불룩한 ‘불두덩’ 아래에서 회음 사이의 조개처럼 생긴 부위로 대음순, 소음순, 음핵, 공알, 질어귀, 처녀막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어쨌든 ‘질의 독백’보다는 ‘보지의 독백’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오며 뇌에 맴돈다. 보지는 실제로 따뜻하게 숨겨야 하는 신체 부위지만, 그 말도 입에 올리지 않고 숨겨야 했기에 입술에 올려 터졌을 때 파급력이 더 큰 것일까.

 


한때에는 보지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유치한 ‘놀이’였다. 지금의 ‘아재’들이 1980년대에 MBC 유아교육 프로그램 ‘뽀뽀뽀’의 주제가를 개사해서 “아빠는 안방에서 잠 자~지, 엄마는 거실에서 책 보~지”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는 20년이 지나도록 이런 놀이를 공식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2013년 8월 듀엣 유브이(UV)가 발표한 신곡 ‘설마 아닐거야’가 KBS와 MBC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가사 후렴구가 음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보지마 보지마 보지마 보지 말아요. 시계 좀 보지 마요. 자지마 자지마 자지마 자지 말아요. 오늘 밤 자지 마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보지라는 말로 ‘숨바꼭질’을 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언제부터 보지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을까?

 

우선 ‘보장지 좌장지 설’이 있다. 권율의 사위이자, 이덕형과의 우정을 그린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이 퇴계 이황에게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물었다.

 

“우리말에 여자의 소문(小門)을 ‘보지’라 하고, 남자의 양경(陽莖)을 ‘자지’라 하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흠, 음~. 여자의 소문은 걸어 다닐 때면 감춰진다 하여 걸음 보(步), 감출 장(藏), 갈 지(之) 세 글자 음으로 ‘보장지(步藏之)’라 하는데, 말하기 쉽도록 감출 ‘藏(장)’을 빼고 ‘보지’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의 양경은 앉아 있을 때면 감추어진다 하여 앉을 좌(座), 감출 장(藏), 갈 지(之) 세 글자 음으로 ‘좌장지(座藏之)’라 하는 것인데, 그 역시 말하기 쉽도록 감출 ‘藏(장)’은 빼고 ‘좌지’라 하는 것이 와전하여 ‘자지’라 하게 됐느니라.”

 

어떤 이는 황희에게 물었다 하고, 어떤 이는 이이에게 물었다고 하는데, 황희가 백사보다 200년 전에 살았기 때문에 황희 버전은 도저히 성립할 수가 없다. 하지만 퇴계나 율곡의 어떤 저서나 당시의 어떤 책에도 이런 이야기가 없다. 2003년 발간된 김형광의 《이야기 조선야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글쎄….

 

좀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론 중국 전래설이 있다. 1690년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간행한 중국어 어휘집 ‘역어유해’(譯語類解)에 두 단어가 표제어로 실린 것이 확인된다. 이 어휘집은 중국어 단어를 문항별로 배열하고 발음과 뜻을 한글로 적었다. 이에 따르면 보지와 자지는 중국어 ‘八子(팔자)’와 ‘鳥子(조자)’에서 왔다고 한다.

 

‘八子’는 중국어로 ‘바즈’인데 소리가 바뀌어 ‘보지’가 됐고, ‘鳥子’는 ‘댜오즈’인데 ‘자지’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 이론이 옳다면, 우리 조상들은 남녀 성기를 언급하는데 쑥스러움을 덜기 위해 외국어를 선택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보지와 자지를 원래는 무엇으로 불렀을까?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 쓴 보지와 자지가 가장 숨겨야 할 말이 됐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일부 언어학자는 ‘보지’가 ‘根(근)’이나 ‘種(종)’의 의미를 갖는 어근 ‘볻’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설명한다. ‘봄’도 이 말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한다. 또 ‘자지’는 ‘씨’를 뜻하는 ‘잦’에서 왔다고 한다. ‘보지’는 만물의 뿌리가 되는 ‘봄’이고, ‘자지’는 그 뿌리를 만들어주는 씨라는 설명이다. ‘보지’라는 말에서 따뜻한 느낌이 나는 것은 이 때문일까?

 

이밖에 작은 아기 보를 뜻하는 ‘보아지’에서 유래했다는 설, ‘보물 같은 땅’이라는 뜻의 보지(寶地)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음지에서 나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지’는 꼭꼭 숨겨야 하는 말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권과 교육 차원에서 드러내려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페미니스트 단체 ‘라비아 프라이드’는 보지의 지식을 알리고 ‘이쁜이 수술’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핑크 코드’를 비롯한 인권단체는 ‘보지 의류’를 걸치고 시위하기도 한다. 일부 교육단체에서는 “보지를 정확히 알 때에 성폭력이 줄고 여성이 성적으로 행복해진다”며 ‘보지 축제’를 벌인다. 이와는 거리가 있지만, 지난해에는 영국의 한 성인용품 회사가 누구의 보지가 가장 예쁜지 가리는 ‘국제 미인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보지와 자지를 입에 올리고, 그것에 대해서 지식을 퍼뜨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에 도움이 되는,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순리일까?

어쩌면 불교의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에 대한 일부 종교학자들의 풀이가 옳을 지도 모르겠다. 이 주문은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인데, 이것은 곧 보지를 상형하는 것이며 보지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얘기다. 인도와 그리스의 여신들이 조가비를 벌리고 탄생하는 것처럼, 새 세상은 보지에서 열리는 것일까?


❶보지, 자지는 비속어인가?

❷보지와 자지의 어원


③보지가 가리키는 범위

④보지와 자지는 생식기?

⑤보지의 구조와 일생

⑥아랫입술, 음순

⑦불두덩과 공알, 보지의 변두리

⑧질어귀와 처녀막

⑨질과 G-Spot

⑩자궁과 난소

⑪보지의 액체

⑫건강한 보지

⑬자지는 무엇인가?

⑭정자의 일생

⑮해면체와 발기

⑯정액과 청수

⑰고환과 전립샘

⑱예술과 문학 속의 생식기

⑲법과 생식기

⑳인공 생식기와 생식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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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출생
    1965년 9월 10일 경북 고령군

    현직
    ㈜바디로 대표, ㈜코리아메디케어 대표

    학력
    고려대 철학과 학사
    연세대 보건대학원 석사

    경력
    1992~2006 동아일보 기자
    2004~2005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 초빙연구원
    2009~현재 대한의료윤리학회 이사
    2010~현재 나누리의료재단 이사

    저서
    “황우석의 나라”(2006)
    “대한민국 베스트닥터”(2004)
    “뇌의학으로 본 한국사회”(2004)
    “인체의 신비”(2003) 등 10권

    수상
    대한민국 청년대상 신문기획보도 부문(2000)
    팬텍 과학기자상(2001)

    국내 첫 성 포털 속삭닷컴과 헬스2.0 포털 코메디닷컴을 이끌고 있다. 동아일보 의학 기자 때 약한 성기능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 기사와 성 칼럼을 썼으며 중앙일보에도 1년 동안 성 칼럼 ‘이성주의 아담&이브’를 연재했다. 현재 아침마다 30여만 명에게 ‘건강편지’를 보내고 있다. “황우석의 나라” “뇌의학으로 본 한국사회” 등 10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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