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동성결혼

1931년 4월 8일 영등포역 달려오는 기차에 차례로 몸을 던진 여학생 홍옥임과 김용주. 이루지 못한 사랑에 자살을 택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매우 너그러웠다.


1932년 6월 잡지 ‘여인’의 창간호에는 남편의 무관심과 이혼으로 오랫동안 독수공방한 두 여인이 연애 끝에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동성의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서 생긴 넌센스’였는데, 이들이 결혼신고를 했는지는 언급이 없었다. 정순임 씨가 신랑이 되고 장경희 씨가 색시가 되어서 조선 고래식(古來式) 예복을 입고 요릿집에서 식을 올렸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최초의 동성결혼식을 2013년 김조광수 영화감독과 김승환이 올렸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남자 최초로 바꿔야 할 것이다. 여자들의 최초는 이미 81년 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 남녀 사이의 연애도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는데, 나이 차가 많거나 또는 노골적으로 연애한다고 말하기가 거북할 때는 서로 S 오빠, S 누이, 또는 S 동생 하면서 만나기도 했었다. 아직도 동성애자들의 소위 ‘커밍아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1930년대에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대수롭지 않게 자기에게 동성연애하는 학생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가부장제의 가정에서 부모와 대화가 잘 안 되던 여학생들에게 ‘말이 통하는 사랑하는 ‘동무’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성학적 의미의 여자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없을 때는 보고 싶고, 맛있는 게 있으면 갖다 주고 싶고, 학교에 가서 그 애를 만나볼 생각을 하면 기뻤다’고 하니, 가히 그 감정은 동성애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때로는 실에 먹물을 칠하고 바늘로 팔뚝부위 같은 데에 문신을 하면서 평생 잊지 말자고 맹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마 당시의 일본문화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본다.

  • Blank 2f561b02a49376e3679acd5975e3790abdff09ecbadfa1e1858c7ba26e3ffcef

    profile

    부산의대 정년퇴임 후 서울여대 치료전문대학원 객원교수로 10년간 ‘성학’을 강의했다. 아태폐경학회연합회(APMF), 한국성문화회, 대한성학회 등의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국제심신산부인과학회(ISPOG) 집행위원, 대한폐경학회 회장,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 회장 및 세계성학회(WAS) 국제학술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단기고사는 말한다>, <사춘기의 성>, <성학>, <섹스카운슬링 포 레이디>, <시니어를 위한 Good Sex 오디세이>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Thumb 1593591084.1134956
페이스북에서 속삭을 만나보세요
속삭
Original 1628810363.5313268
Original 1628810343.805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