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은 상대를 위한 '연기'일까? 과학이 내놓은 답

성관계 중 내는 소리, 흔히 '신음'은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연기라는 시선이 많다. 실제로 여성들이 파트너를 위해 일부러 소리를 내거나 과장한다는 설문 결과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녹음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절정의 순간에는 남녀 모두 말이 사라지고 소리가 커지며, 이는 의도한 연기라기보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즐거움의 표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21일(현지 시각) 스웨덴 연구진(안드레이 아니킨 박사)은 국제학술지 '진화와 인간 행동(Evolution and Human Behavior)'에 발표한 논문에서 실제 성적 상황에서 녹음된 소리를 처음으로 대규모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그동안 영장류의 짝짓기 소리는 많이 연구됐지만, 사람의 성관계 소리를 실제 녹음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기존 연구는 대부분 설문이나 성인 영상 분석에 그쳤다.
◆ 34시간 분량 녹음… 청취자 109명이 실시간 평가
연구진은 사용자들이 직접 녹음해 올리는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성관계나 자위 중 녹음된 음성 파일을 내려받아 분석했다. 중복이나 잡음이 심한 파일, 두 사람 이상의 목소리가 섞인 파일 등을 걸러낸 뒤 총 2239건, 약 34시간 분량의 녹음을 분석에 활용했다. 여성 목소리가 1950건, 남성이 289건이었다.
음향 분석과 함께 청취 실험도 진행했다. 성인 109명이 녹음 200건을 들으며 화면의 막대를 움직여 '이 사람이 얼마나 흥분한 것처럼 들리는지'를 실시간으로 표시했다. 듣고 난 뒤에는 목소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즐거움이 진짜처럼 들리는지도 답했다.
분석 결과 흥분도는 점점 올라가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산 모양'을 그렸고, 정점은 대개 녹음이 끝나기 몇 초 전에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지점을 절정의 순간으로 봤다. 이때 남녀 모두 소리가 더 길고, 크고, 높아졌으며, 숨소리보다 목소리가 섞인 소리가 늘고 예측하기 어려운 패턴을 보였다. 절정 무렵 여성의 목소리 높이는 평균 386Hz, 남성은 218Hz까지 올라갔다.
흔히 남성은 조용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분석에서 전체적으로 소리를 내는 시간은 남녀 간 큰 차이가 없었다. 차이는 타이밍이었다. 여성은 관계 초반부터 목소리를 섞은 신음을 내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남성은 주로 절정 무렵에야 목소리를 냈다. 절정의 순간만 놓고 보면 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소리를 냈다.
말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좋아', '이제 간다' 같은 짧은 감탄사나 욕설이 흥분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간간이 나왔지만, 절정의 순간과 그 직후에는 거의 말없이 소리만 남았다. 연구진은 이를 중요한 단서로 봤다.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면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조절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으로, 소리가 의도적인 연기라기보다 저절로 나오는 반응일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인 영상에서 흔히 보는 높고 요란한 비명도 거의 없었다. 절정의 순간에도 대부분은 한숨이나 비교적 낮은 신음이었다. 여성 소리 가운데 1초 넘게 이어지면서 높은 음역에 이르는, 비명이라 부를 만한 소리는 1.2%에 그쳤다.
◆ 너무 요란하면 '가짜'처럼 들려
청취자들은 녹음의 약 62%를 진짜라고 판단했다. 흥미롭게도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길고 많을수록 진짜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는 평가가 늘었다. 이런 경향은 남성보다 여성의 녹음에서 더 뚜렷했다. 또 남성 청취자는 남성보다 여성의 소리를 더 진짜라고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연구진은 실제 당사자의 감정을 확인할 방법은 없어, 이는 '무엇이 진짜처럼 들리느냐'에 대한 결과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성은 파트너를 자극하거나 이끌기 위해 소리를 낸다'는 통념도 이번 분석에서는 들어맞지 않았다. 녹음 상당수가 파트너 없이 혼자 하는 자위로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없어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리를 많이 냈다.
연구진은 사람이 관계 중 소리를 내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신체적 이유다. 운동선수가 힘을 쓸 때 기합을 넣듯, 격렬하게 움직일 때 새어 나오는 소리가 있다. 성관계는 한 번에 약 100kcal를 쓰고 심박수가 분당 145~170회까지 오를 만큼 꽤 힘이 드는 활동이다. 둘째는 감정적 이유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고통에서 벗어날 때처럼, 큰 즐거움을 느낄 때 뇌가 저절로 소리를 내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점에서 성관계 중 소리를 성관계만의 특별한 신호라기보다 '좋아서 내는 소리'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사회적 이유다.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이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는 소리도 분명히 있다.
다만 연구에는 한계도 있다. 자신의 녹음을 직접 올리는 사람들이 일반인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고, 녹음을 의식해 소리를 더 냈을 가능성도 있다. 녹음을 모은 사이트가 여성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 곳이라 남성 녹음은 적었고, 성별 외에 나이나 문화권 같은 정보가 없어 비교에 한계가 있었다. 절정 시점도 소리로만 추정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당사자의 보고나 생체 신호로 절정 시점을 따로 확인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주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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