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토이 업계 '기능 추가 경쟁' 심각한 부작용
투자 유치를 노린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섹스토이에 대한 ‘점진적인 기능 추가 경쟁’(feature creep)이 심각한 부작용을 빚고 있다.
섹스토이에 기능을 약간 추가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들어가나,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실리콘밸리의 섹스토이에 대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도 덕분에, 성인용 기술과 다른 산업을 분리하는 벽이 서서히 무너진 것은 사실이다.
섹스토이 제조업체 ‘오마이바드’(OhMiBod)는 애플사의 전 직원이 창립했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레블 바디’(Revel Body)라는 섹스토이가 엔젤 투자자에 의해 개발됐다. 또 ‘미스터리 바이브’(MysteryVibe)는 등급이 높은 포르노영화가 아니라, 포드·게토레이 등의 품격 있는 디자인을 맡는 회사와 함께 일한 경영 컨설턴트 출신이 세웠다.
문제는 실리콘밸리의 사고방식을 성 관련 제품에 적용할 경우 끔찍한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다. 불륜 알선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Ashley Madison)의 경쟁기업 ‘빅토리아 미란’(Victoria Milan)에서 일했던 야쿱 코닉이 개발한 콕링 ‘러블리’(Lovely)가 그 좋은 사례다.
‘러블리’는 남성의 음경에 반지처럼 끼우고 스마트 폰과 연동해 성관계에 따른 칼로리 소모량을 측정해 주는 기기다. 월 29.9달러(약 3만 1,640원)을 내면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성교육·성관계 전문가들에게서 새로운 체위와 성 관련 활동에 대한 각종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이 기기는 크라우드펀딩 당시 소비자들의 관심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벤처투자자들의 펀딩을 받았다.
코닉의 개발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그는 어느 날 여자 친구와 성관계를 맺다가 칼로리가 얼마나 소모되는지 돌연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런 앱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란 그는 ‘러블리’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섹스토이 업체 ‘데임 프로덕츠’(Dame Products)의 공동 설립자 겸 CTO(최고기술책임자)인 자넷 리버만은 “현재 있는 장치의 이름 앞에 ‘스마트’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은 매우 쉽다”고 말했다. 시스템에 연결하면 곧장 사용할 수 있는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으로, 멍청한 장치를 똑똑한 장치로 바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능을 기존 장치에 간단히 넣는 것은 항상 필수적인 것도, 좋은 생각도 아니다. 특히 섹스토이의 경우 그렇다.
러블리와 위바이브(We-Vibe)의 ‘위 커넥’(We-Connect) 제품 라인 및 ‘미스터리 바이브’의 ‘크레센도(Crescendo) 등 스마트 섹스토이는 다양한 미래의 기능을 약속한다. 하지만 소비자 친화도가 높은 바이브레이션 패턴, 쉽게 저장할 수 있는 설정, 칼로리 소모량 정보 등 각종 기능을 추가하는 데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또 이런 향상된 기능에 접근하려면 휴대전화를 침실에 가져가거나 성관계 중에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기기가 매우 불쾌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러블리’ 같은 기기의 경우 득보다는 실이 훨씬 더 많다고 보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자넷 리버만은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자위행위 횟수를 알고 싶어 하는 기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데임 프로덕츠 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섹스토이 소비자들은 화려한 앱과 연결 기능보다는, 품질이 좋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돼 사용하기 쉬운 섹스토이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기능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는 관심 밖이다. 섹스토이 업체들은 이미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아마존·애플·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들은 성관계 기술을 확보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적 접근법은 섹스토이 분야에 좋지 않다. 특히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벤처투자자들의 펀딩을 지나치게 많이 의식해 섹스토이를 디자인하는 한, 희망이 없다.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뒷전에 밀리게 마련이다.
벤처투자자들의 관심을 처음으로 끈 섹스토이 회사들 가운데 하나인 ‘지미제인’(Jimmyjane)의 초호화 바이브레이터 제품도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에 부응하는 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몇 년 동안 성관계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영감으로 자라고 있는 농작물까지 모두 쓰러진다면, 앞으로 또다시 벤처투자자들의 펀딩이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제조업체의 은행계좌에는 나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업체들의 얕은 생각으로 무분별하게 탄생하는 섹스토이의 홍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섭 기자 edwd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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