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사진 1세대' 계명대 이재길 교수 정년회고전

'누드사진 1세대' 계명대 이재길(65) 교수가 오는 25일부터 내달 4일까지 정년회고전을 연다.


우리나라 누드 사진 1세대인 계명대 이재길(65) 교수가 정년을 맞아 오는 25일부터 내달 4일까지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 극재미술관에서 정년 회고전을 연다.

 

이 교수는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누드사진계를 일군 개척자였다. 일찍이 광고사진계의 거물이던 그는 1970년대 말부터 상업사진의 영역이 아닌 작가주의적 작품을 담는데 심취했다. 1985년 패션누드 사진집 《Woman&man》을 펴낸 데 이어 서울 일본문화센터에서 ‘빛과 여인들’ 이라는 주제로 첫 누드사진전을 가졌다.

 

보수적이던 국내 언론과 사진계에서는 이 교수의 작품 앞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응이 달랐다. 한국 여인들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환(幻)》 , 《몽(夢)》시리즈가 연이어 히트했고, 미국, 대만 등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졌다. 이 교수는 국내외에서 35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강호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해외에서 뜨거운 호응을 보이자 국내에서도 서서히 반응이 나타났음은 물론이다.

 

이 교수의 누드사진은 국내 처음으로 예술작품 저작권, 초상권에 관한 법적 효력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1988년 국내의 모 잡지사는 일본에서 발간한 이 교수의 작품을 입수해 포르노성 기획이라고 매도하고 주요 부분을 임의로 확대해 출판했다. 이 교수는 저작권 침해와 명예훼손을 주장했고, 잡지사는 공표된 저작물의 시사보도라고 맞섰다. 이 소송은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차례로 이 교수의 변호를 맡고, 이회창 전 총리가 대법원 판결을 내렸다. 여기서 승소하자 사진 비평계에서 이 교수의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재길 교수의 《American Myth》. 1995년 작품


이 교수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99년 계명대 사진미디어전공 교수로 임명된 이후에도 후학을 양성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또 2001년 세계 유교문화축제 전시 영상자문위원, 문화관광부 한복 CI 영상물 제작 자문위원, 2002년 한국광고대회 유공 광고인 국무총리 포상, 2005년 경주세계엑스포 자문위원 등을 맡았다.

 

전시회 첫날인 25일에는 작품집 출간 기념회가 열린다. 그의 회고 작품집에는 사진가로서 현장의 숨결이 담겨있는 작품과 교육자로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담겨있다. 전시회는 50년여 년의 작품 활동을 되돌아보는 대표작을 포함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 등 12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주말에는 휴관한다. 이 교수는 전시회가 끝나면 모든 작품을 계명대에 기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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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완종 기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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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사진, 언제쯤 예술로 인정받을까요?"

    일본 사진계에서는 이 교수의 누드사진이 은은한 동양의 예술미가 서려있는 작품이라고 흥분했다. 일본 사진계가 이 교수의 예술세계를 인정하자, 관망하던 국내에서도 궁둥이를 떼기 시작했다. 1985년 서울에서 《빛과 여인들》 주제의 전시회에 이어 이듬해부터 매년 《환(幻)》 시리즈의 누드사진전이 열렸다. 그러나 누드사진이 눈요기로 여겨지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의 뜨거운 관심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1988년 여성잡지 《여원》에서 “사진예술작품들, 일본으로 건너가 포르노성 기획으로 둔갑"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교수의 작품 활동을 비판한 것. 한 마디로 왜인들에게 한국 여자를 포르노 배우로 판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졸지에 포르노 배우가 된 모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일본에서 발간한 책을 모두 폐기시키고 《여원》과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누드사진집 소송에는 한국사의 거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씨의 변호는 당시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차례로 맡았고, 대법원 판결은 이회창 전 총리가 담당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에서 이겼고, 전량 폐기했던 책을 보완해서 사진집 《몽환》을 펴냈다. 사진집의 이 사진집에서는 소설가 최인호, 시인 조병하 등 당대의 문인들이 서문을 썼다. 출판은 국내 최초의 사진평론가 김승곤 씨와 부인 임향자 씨가 운영하는 타임스페이스 출판사에서 맡았다. 명예 회복 전시회도 열었다. 비로소 우리나라 사진비평계에서도 이 교수의 작품세계가 한복과 여체가 어울린 ‘한국적 누드사진’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소송에서 이기면서 지명도가 올라갔다고나 할까요? 남대문시장 의류회사들의 패션사진 주문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유학파가 찍은 사진은 예술 취급을 받고, 토박이 사진작가가 찍은 것은 포르노 취급을 받는 현실에 대해 회한이 밀려왔지요.” 1993년에 그는 후배인 당시 임영균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의 소개로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로 유학을 떠났다. 막상 뉴욕에 가보니 SVA는 이 교수를 알아봤다. 학교 측은 “우리를 찾아줘서 영광”이라고 반색을 하면서 “4학년으로 편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교수는 《American Myth》 사진집을 내고 소호에서 《Dream and Fantasia》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가 성황이라는 소식은 동아일보 이규민 특파원의 기사를 통해 모국의 신문에 소개됐다. 1997년 이 교수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American Myth》 누드사진전을 열면서 대한민국 사진계로 금의환향했다. 팽팽한 자신감으로 충무로에서 대형 스튜디오를 열었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터졌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닥친 것. 이 교수가 확보한 패션회사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고객들은 발길을 끊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하늘은 시련과 함께 살 길을 던져준다고 했던가?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서 동아일보 지면을 펼쳤다가 계명대 사진학과 교수 모집공고를 본 것이었다. 부랴부랴 마감일을 맞춰 17번째로 원서를 접수했고, 며칠 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계명대 신일희 총장이라고 합니다. 내일 아침에 서울시청 앞 백남빌딩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신 총장은 약속장소에서 몇 분 동안 이것저것을 묻더니 말했다. “우리 학교로 오소!” 이 교수는 몇 년 뒤까지 대학교수 채용 면접은 그렇게 보는 줄 알았다. 이 교수는 80년 중반부터 30년 가까이 교직에 있으면서 뉴욕, 도쿄, 베이징, 타이베이 등 해외 초대전을 비롯해서 30여 회의 누드사진전을 연 ‘강호의 대가’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누드사진에 대한 편견을 씻어내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는 것이 아쉽다. “벌거벗은 몸을 찍는다고 누드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 모델 옷 벗겨서 찍고는 누드사진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누드사진에는 원천적 예술정신, 작가의 주제 구상. 모델 선정의 노력, 작가와 모델의 소통 등이 녹아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누드사진 작가도 모델도 드물다는 것. 이 교수는 사진계에서 다큐 사진만 쳐주고 인물, 누드 사진은 여줄가리로 여기는 경향이 안타깝다.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작가도 적을뿐더러 비평도 부족하다. 이러다보니 한국누드사진가협회에 속한 회원은 200명이 넘지만 대부분 아마추어 작가들이다. 누드모델은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 교수에 따르면 누드사진이 예술로 대접받고 있는 외국에서는 일반인이 벗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심지어 지역 주민 전체가 벗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힘들게 구한 모델도 누드사진에 대한 이해가 얕아서 좋은 작품을 찍기가 힘들다. 모델의 포즈가 획일적이고 깊이가 없으며 몸에서 체취가 나는 모델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 “대학교수가 되자마자 서양화과를 설득해서 서양화 누드모델들이 사진실습도 같이 하게끔 했지요. 그러나 2년 만에 사진 모델은 안하겠다고 합디다. 모델조차 누드사진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셈인데 아직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 교수가 미국에서 《American Myth》를 완성할 때 커피숍에 모델을 구한다는 쪽지를 붙이자 예일대 박사 과정의 여성이 콜롬비아 대 교수인 남편과 함께 왔다. 모델 후보는 이 교수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흔쾌히 옷을 벗었다. 그는 하루 200여 달러를 받고 미국 남서부 지역을 같이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작가와 모델의 지적 교류는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교수의 사진사(寫眞史)는 중3때 까까머리 친구가 찍은 사진에 혼이 빼앗겨 사진의 세계로 들어온 지 50여 년이 흘렀다. 올 가을 회고전에 전시될 사진을 고르면서 사진들에 서려있는 기억들이 떠올라 콧잔등이 시큰해지거나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편견과 위선에 맞서 광고사진과 누드사진의 지평을 넓혔지만 가슴 한 구석에 꿈틀대는 아쉬움을 떨칠 수는 없다. 아직 전문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누드사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드사진의 예술정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성’은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리 사회의 터부 때문일까? 이 교수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우리나라의 성이 미국보다 더 건전하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 성문화가 위선적이고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자신이 성에 대해 윤리적으로 자신감이 없기에 인간본성을 똑바로 볼 수가 없고, 부정적 시각으로 누드사진을 재단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교수 연구실에 켜켜이 쌓인 사진, 벽에 걸린 누드사진들의 여체가 “그래요!”라고 온몸으로 동의하는 듯하다. 이 교수 둘레로 동양미 그득한 누드사진들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다른 기사 보기 [섹스 파이오니아①] "누드사진 찍으며 위선과 싸워왔지요" [섹스 파이오니아②] "누드사진, 한국은 눈감고 일본은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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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사진, 한국은 눈감고 일본은 호평”

    이 교수의 명동 생활은 밤낮없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 땅에 광고사진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끼니를 잊고 일했다. 더러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죄책감이 고개를 들곤 했지만, 사진에 대한 뜨거움이 그것을 덮었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사진의 무릉도원에 빠져 연락이 끊긴 막둥이를 찾으라고 며느리에게 SOS를 쳤다. 형수는 기신기신 시동생을 찾아왔다가 깜짝 놀랐다. 막둥이의 얼굴이 반쪽이 된 것. 이 교수는 밤낮없이 일하느라 자신이 폐결핵과 급성간염에 걸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황달을 지나 흑달이 와 온몸이 거무튀튀했다. “병원에서는 오래 못 살 것 같다고 진단했고 곧바로 귀향할 수밖에 없었지요. 동대구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맨날 교통비가 아까워 걸어 다니시거나, 버스를 타시든 분이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택시를 잡았습니다. 곧바로 대구시내에서 사촌매형이 원장으로 있는 이철상내과의원(현 대한내과)으로 향했지요. 그 길이 참 멀게 느껴졌습니다.” 이 교수는 서울 의사의 말과 달리 건강을 되찾았다. 자신을 끝까지 믿어주는 아버지와 지극 간호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꼭 일어서야 했다. 어머니가 칠성시장에서 사온 개고기와 돼지고기를 꾸역꾸역 먹으면서 체력을 비축했다. 사촌매형이 주치의가 된 것도 행운이었다. 이 원장은 대구 경북지역에서 위 질환과 결핵 치료의 손꼽히는 명의였다. 병원에 위내시경 장비를 설치하고 원내 현상소에서 직접 사진을 현상해서 환자 치료에 쓸 정도로 최신치료에 앞장선 의사였다. 이 교수는 몸을 꿈적이게 되자 다시 카메라를 찾아 친구인 권중인 전 경성대 교수의 집 2층 창고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는 우연히 자신에 버금가게 사진에 미친 박 매리 다니엘 수녀를 만났다. 수녀는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의무기록학과 사진학을 공부했고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어 했다. 이 교수는 미국 유학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일념에 수녀를 도왔다. 이 교수의 사진 활동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던지, 수녀가 속한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서 안셀모 수사가 후원자로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시가 400만 원대의 독일제 린호프 카메라를 사주기까지 했다. 당시 봉급쟁이가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살 수 있는 고가품이었지만, 미래의 세계적 사진작가를 위해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야근해서 갚아라!”며 선물한 것. 다니엘 수녀는 더 큰 선물을 줬다. 수녀는 이 교수에게 자신의 수양동생을 소개시켜줬고, 두 사람은 사랑을 싹틔워 결혼에 이르렀다. 이 교수는 결혼비용을 아껴서 이듬해인 1977년 충무로로 복귀했다. 오로지 광고사진으로 우뚝 서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는 삼성, 코오롱 등의 홍보실에 무작정 찾아가서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물량을 따냈다. 마침 우리나라에 기성복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여서 수요가 넘쳤다. 광고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부족할 때여서 이 교수의 주가는 올라갔다. 《멋》 《여원》 등 잡지에서 화보 요청이 밀려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업에서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찍새’로 보는 겁니다.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페이지를 찢어서 ‘이렇게 찍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작가정신이 상처를 받았다고나 할까요? 제 작품을 찍고 싶었습니다.” 이 교수는 1970년대 말부터 패션사진과 함께 누드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본 오키나와로 ‘원정’을 가서 찍은 작품으로 1985년에 패션누드 사진집 《Woman & Man》을 펴냈다. 이 사진집은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분도인쇄출판사에서 밤샘 작업 끝에 나왔다. 천주교 수도원에서 누드사진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인쇄를 결정한 것.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과 사진계에서는 한국미를 표현한 누드사진 작가의 출현에 눈을 감았다. 이 교수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먼저 화제였다. 일본 사진전문지 《포토자폰》에서 15쪽에 걸쳐 특집으로 소개했고, 일본문화원에서는 《빛과 여인들》이란 제목으로 누드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일본 팬탁스 포럼 초대전에서는 한국여인들의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한 《환(幻)》 시리즈가 소개됐고 일본 최대 출판사 코뷴샤(光文社)에서 이 교수의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의 예술미를 표현한 누드 사진작가가 탄생했지만,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먼저 호평을 받은 것이다. 다른기사 보기 [섹스 파이오니아①] "누드사진 찍으며 위선과 싸워왔지요" [섹스 파이오니아③] "누드사진, 언제쯤 예술로 인정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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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드사진 찍으며 위선과 싸워왔지요”

    대구 계명대 미대 아트앤미디어학부 이재길 교수(65)의 연구실은 사진액자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오는 10월에 열릴 ‘이재길 사진 50년 정년 회고전’에 전시될 사진들이다. 대부분이 여체(女體)의 신비가 담긴 누드 사진들이고 상당수는 해외에서 전시됐다가 되돌아온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누드사진의 세계를 연 작가로 꼽힌다. 누드사진의 개척자란 곧, 30여 년 동안 비난, 모욕, 위선과 싸워왔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고교 때 ‘사진의 도시’ 대구에서 이름을 날리던 ‘얄개 사진작가’였다. 대건고에 다니면서 교모와 교복 대신에 형에게서 빌린 대학 학사모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녔다. 콘테스트를 휩쓴 고교생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려해준 덕분이다. 이 교수의 운명은 중3때 친구 김기웅 씨(현 섬유회사 대표)가 바닷가에서 찍은 일출 사진을 보면서 정해졌다. 그는 이튿날 친구에서 사진 찍는 법을 배웠고,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사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서문시장에서 포목상을 했는데 당시 부유한 편이기도 했지만 예술의 멋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공기총, 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를 때에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지만, 카메라는 단박에 사줬습니다.” 당시 직장인의 월급이 2만 원 남짓할 때 3만원이 넘는 페트리7S가 까까머리의 손에 들어왔다.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고, 현상소가 ‘작은 집’이었다. 성에 차지 않아 어른들이 다니는 월산사진예술학원에 등록했다. 정일성, 김태한, 신현국 등 내로라하는 ‘사진의 고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암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포토그라피》, 《카메라예술》 등의 잡지에서 여는 고교생 사진 콘테스트에서 상을 휩쓸었다. 고3때에는 대구 공화당사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국내 최초로 개인전을 연 고교생이라고 우쭐했는데, 아뿔싸, 자신보다 먼저 고교 때 전시회를 연 사람이 있었다. 서울의 유명 곰탕집 ‘하동관’ 주인의 아들로 나중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장이 된 김희중 씨였다. 10년 선배인 김희중 씨는 경기고 2. 3년 때에 각각 개인전시회를 열었고, 연세대 2년 재학 중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 교수는 김희중 씨를 ‘삶의 모델’로 삼았고, 자나 깨나 미국에서 공부하는 꿈을 꿨다. 이 교수는 중앙대 사진과의 전신인 서라벌예대 사진과로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동랑 유치진이 세운 서울연극학교(지금의 서울예대)에서 성적 우수자에게 미국으로 유학 보내준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를 옮겼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막내아들의 꿈을 받아줬고, 하숙보다는 누나 집에서 기거하라며 이불 보따리를 부쳤다. 그러나 누나 집에 갔더니 마당에 이불보따리가 팽개쳐 있었다. 판사였던 자형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 분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돈이 남아돌면 사진관이나 차려주시지, 나는 이런 딴따라와 같은 지붕 밑에서 못 삽니다.” 이 교수는 꺼이꺼이 울면서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타박타박 남산골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숙하면서 오로지 미국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다. 지금은 원로 연기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최종원, 김동현, 그리고 연출가 한태숙 등과 함께. 이 교수는 얼마 뒤 뜻하지 않게 평생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를 속이는 일을 벌이게 된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적을 두고 아버지 동랑이 설립한 학교에서 강의하던 유세 교수로부터 편입 제안을 받고 아버지에게 알렸다. 고향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흔쾌히 막내의 요청을 받아줬고 주저하지 않고 등록금을 부쳤다. 그러나 유세 교수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서 동국대 편입은 ‘없었던 일’이 돼 버렸다. ‘철없던 막둥이’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끙끙대다가 ‘잔머리’를 굴렸다. 아버지에게 동국대에 편입했다고 거짓말하고 등록금으로 서울 명동 유네스코 건물 옆에 10평짜리 사진 스튜디오를 차린 것. 어영부영 다시 사진의 세계, 고생문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서라벌예대 사진과 친구들과 함께 밤낮으로 사진과 살았다. 임대료를 내기 위해 밤에는 부근 현상소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대한민국 사진역사에 굵직한 성과를 냈다. 명동 양복점의 협찬을 받아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국내 첫 ‘광고사진전’을 연 것.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구분이 명확하고 광고사진을 홀대하는 경향이 큰데 그때는 훨씬 심했지요. 선진국에서는 세계적 사진작가들이 멋진 광고사진을 찍지요. 베네통은 올리비에르 토스카나가 찍은 연작 사진으로 세계적 위치로 브랜드를 격상시키지 않았습니까?” 첫 광고사진전을 여는 과정에서 ‘스타’가 탄생했다. 이 교수는 명동의 유명 음악다방 ‘꽃다방’ 지배인이었던 미남의 ‘주먹 형님’에게 사진전의 모델을 요청했다. ‘형님’은 대학생의 당돌한 요청에 기분 좋게 응했다. ‘형님’의 멋진 모습은 사진 속에서 빛났고 각종 잡지의 모델 요청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가 바로 현재 패션모델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재연 모델라인 엔터테인먼트 회장이다. 다른기사 보기 [섹스 파이오니아②] "누드사진, 한국은 눈감고 일본은 호평" [섹스 파이오니아③] "누드사진, 언제쯤 예술로 인정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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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키지 않는' 조용한 체위 5가지

    휴일을 맞아 가족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릴 때 욕정이 끓어오르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꾹꾹 참았다가 집에 돌아가는 도중이나 돌아간 뒤 안전하게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옆방에서 급한 불을 끌 것인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고, 옆 사람의 잠을 깨우지 않으면서 성관계를 맺으려면 소음을 내지 않는 조용한 섹스가 필요하다. 섹스토이 브랜드 ‘위바이브(We-vibe)의 ‘글로벌 열정 대사’(Global Passion Ambassador)인 트리스탄 위드마크는 “조용한 섹스는 절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다소 변태스러운 측면 때문에 흥분을 자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성적으로 자극받은 상태인데도 조용히 해야 한다면, 그 자체가 기막힌 흥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성 전문가 제시카 오레일리 박사는 “침대에서 삐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할 자신이 없다면 방바닥· 의자에서 성관계를 갖거나, 담요·베개를 이용하거나, 문틈을 수건으로 막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미국 패션잡지 ‘글래머’는 섹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침대 소음을 일으키기지 않는 조용한 체위 5가지’를 소개했다. 1. 서서 하기(Standing up) 벽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야 할 경우에도 스탠딩업 체위는 가구를 흔들어 소음을 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친척과 같이 방을 쓸 경우 샤워를 하면서 섹스하는 것도 좋다고 위드마크는 말한다. 오레일리 박사에 의하면 ‘섹스 샤워’의 또 다른 장점은 입안에서 나오는 소음이 밖에서 들리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2. 스푸닝(spooning) 두 사람이 숟가락처럼 누워, 한 사람이 뒤에서 삽입하면 된다. 스푸닝 체위는 야단법석을 피우지 않고도, 상대방을 물고 빨고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까이 있는 자세다. 따라서 이 체위에는 많은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다. 놀랄 만큼 평범한 체위이면서도, 조용한 성관계에는 그만이다. 3. 침대 모서리의 도기스타일( Edge-of-the-bed doggy-style) 한 사람은 몸을 아래로 굽힌 채 팔꿈치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또 한 사람은 뒤에 서서 성관계를 한다. “침대 머리가 덜컹거리지 않게 침대 끝 대신 옆을 이용하라”고 위드마크는 귀띔했다. 4. ‘몸 수색형’ 체위(The “cavity search") 침대 밖에서 이 체위를 취하기 위해선 한 사람이 다리를 벌리고 서서 허리를 굽혀 발목을 움켜잡고, 다른 한 사람은 뒤에서 들어간다. 오레일리 박사는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소리를 내지 않는 좋은 대안"이라고 말한다. 5. 69 구강성교는 넣고 빼는 동작이 적기 때문에 음경이 잘 빠지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성교는 삽입성교보다 조용하다. 위드마크는 “주말에는 삽입성교 대신 소음이 적은 섹스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섹스 스타일을 바꾸면 새로운 테크닉을 구사할 기회가 생기며, 파트너를 다시 알아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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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플 점점 닮는 이유, ‘이것’ 때문 (연구)

    2016년, 올리비아 브루너라는 미국 여성은 DNA 테스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어릴 때 입양된 그녀는 남자 친구와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 불안했던 것. 테스트 결과 둘은 남남인 것으로 드러났고, 지난해 결혼에 골인했다. 왜 커플들 중에는 서로 닮은 경우가 많을까?  1987년 미시건 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부부의 외모가 점점 비슷해지는 것은 오랜 시간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둘은 수십 년을 같이 살며 웃음도 울음도 함께 한다. 결국 비슷한 위치에 주름이 생길 것이고, 표정이며 분위기가 닮았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처음부터 닮은꼴인 연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킨제이 연구소의 사회 심리학자 저스틴 레밀러는 “친숙한 것에 끌리는 성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외모에 익숙하다. 따라서 닮은 사람, 또는 비슷한 특성을 공유한 사람을 보게 되면 쉽게 마음을 열고, 좋아하게 된다는 것. 2013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의 결론도 비슷하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얼굴 이미지를 보였다. 참가자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의 얼굴을 디지털적으로 변형하고 조합한 이미지였다. 이어서 연구진은 가장 매력적인 얼굴을 고르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남녀 모두 자신의 얼굴이 반영된 이미지를 선택했다. 유전자에서 답을 찾는 이들도 있다. 건강포털 코메디닷컴에 따르면 많은 논문이 타인에 비해 배우자끼리 유전적으로 비슷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친구들, 그리고 커플들 간의 유전적 유사성을 연구하는 스탠퍼드 대학원의 벤 도밍고 교수는 “유전적으로 닮은 이들은 사회적, 문화적 배경도 비슷하다”면서 “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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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경수술, 요즘도 해야 하나요?

    흔히 고래를 잡는다고 표현하는 '포경수술'. 실제로 대한민국은 남성 인구의 절반 이상이 포경 수술을 받을 만큼, 흔한 수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포경수술의 필요성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고민되는 포경수술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아봅니다.  Q. 포경 수술은 왜 하는 거죠? 포경수술은 포피를 젖혀서 귀두를 노출시키지 못하는 포경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음경의 귀두를 덮은 포피 부분을 제거하고 귀두를 영구적으로 노출하는 성기 성형수술입니다. 처음 국내에선 생식기 청결과 감염 예방을 위해 필요한 수술로 알려졌죠. 그 이유는 성기를 피부가 덮고 있으면 그 안쪽에 염증도 잘 생기고, 냄새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위생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발기가 됐을 때 각도와 모양을 고려해 일부러 표피를 정교하게 잘라내는, 미용상의 목적으로 수술하는 경우도 꽤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부모님의 강권에 의해서 포경수술을 받기보다는 본인이 성관계를 하면서 포경을 해야 하겠다고 필요성을 느낄 때 직접 수술을 결정하는 분위기입니다. Q. 포경수술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사람은? 유아기에서 소년기까지 남성의 포피와 귀두는 보호를 위해 붙어있는 상태를 이루며, 이를 소위 말해 ‘포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십 대에 들어 2차 성징이 올 때면 점차 유착된 것이 분리되어 자연스럽게 포피를 벗겨 귀두를 드러낼 수 있게 되며, 대부분의 남성이 이십 세를 넘기 전에 포경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포경수술은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수술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귀두가 크거나 포피 입구가 좁으면 그 사이에 이물질이 자주 껴 염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잦은 염증은 요도 입구에 탁한 분비물이 고이는 귀두포피염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죠. 또 포피가 너무 길면 포피와 요도에 세균이 번식해 요로감염에 걸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본인이 위와 같은 질환을 갖고 있다면, 비뇨기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Q. 포경수술을 하면 성감이 떨어지는지? 수술 후 성감이 떨어지는 문제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은 이슈이긴 합니다. 포경수술로 인해 직접적으로 성감이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포경수술이 성감을 감소시킨다는 속설이 생긴 이유는 포피에 있는 신경세포가 잘려 나가기 때문입니다. 수술로 귀두를 싸고 있는 포피를 일정 부분 잘라내면, 귀두는 모양도 이쁘고 깨끗하게 되지만, 표피에 발달해있던 감각세포도 동시에 사라집니다. 또 성감대인 귀두가 수술 후에는 계속 밖으로 노출되어 있다 보니 감각이 좀 더 둔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표피가 남아있는 경우보다는 성관계 시에 성감이 못하고, 사정이 지연돼서 조루가 되어버렸다는 수술 후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하지만 신경세포는 포피뿐만 아니라 음경 전체에 퍼져 있고, 성감 자체가 워낙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포경수술이 성감을 줄인다는 건 여전히 애매모호한 상황입니다. Q. 포경수술을 하면, 성기가 덜 자란다? 수술하면 성기가 덜 자란다는 속설은 일단 표피가 잘려 나가니까 작아질 거라는 오해에서 비롯한 것인데요. 이건 수술 시기와도 연관이 있는 이슈이긴 합니다. 2차 성징 시 충분히 자라도록 표피를 남겨두어야 하는데, 그전에 잘라서 꿰매버리면 성기의 성장에 방해한다는 논리죠. 하지만 성기의 크기란 것은 발기가 되었을 때 vs 발기가 되지 않았을 때가 다르고, 게다가 실제 발기란 피부의 문제가 아닌, 발기 조직의 문제이기 때문에 표피를 잘라내서 성기가 작아졌다는 논리는 100%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어렸을 때 수술을 받게 된 경우에는 이후 성장을 대비, 표피는 일정 부분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최근엔 이러한 이슈로 유년기보다는 성장이 멈춘 성인이 돼서 포경수술을 고려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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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욕 향상 음식 7가지... 어떤 효과 있길래?

    성욕을 높이고 성생활을 더 활기차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음식들이 있다. 물론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성적 능력이 극적으로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정한 음식을 꾸준히 섭취하면 혈류가 원활해지고 에너지가 보충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결국 성적인 지구력과 감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건강전문매체 이팅웰(Eating Well)의 자료를 바탕으로 성욕을 높여주는 7가지 음식에 대해 알아본다.  굴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정력에 좋다고 여겨졌던 굴은 아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아연은 정자의 생산과 호르몬 균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네랄로 남성의 생식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굴을 함께 먹는 행위 자체도 친밀감을 높이고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크 초콜릿다크 초콜릿에 함유된 플라보놀이라는 항산화 성분은 혈류를 증가시키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로 인해 성적인 반응이 더 민감해질 수 있으며 일부 연구에서는 발기부전 개선과도 연결된 바 있다. 카카오 함량이 60% 이상인 제품이 추천되며 한 조각 정도의 적당량만 섭취하는 것이 좋다. 비트비트는 칼륨이 많아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류를 원활하게 만든다. 눈에 띄는 붉은 색은 심리적으로도 자극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시각적인 자극이 성적 반응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견과류와 씨앗아몬드, 캐슈, 땅콩 등은 마그네슘과 아연이 풍부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에너지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호박씨는 작지만 아연과 칼륨 함량이 높아 테스토스테론 수치 유지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성분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한된 연구 결과만 존재하며,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음식은 보조 수단, 적당한 섭취가 핵심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커피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각성을 유도하고 기분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적당량을 마셨을 경우 성욕을 자극할 수 있지만 과하게 섭취하면 불안과 탈수를 유발해 성적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하루 1~3잔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본다. 수박수박은 수분이 풍부해 신체를 자연스럽게 촉촉하게 유지시키고 피로감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칼륨도 많이 들어 있어 혈압 조절과 혈류 개선에 도움이 된다. 간단하게 섭취할 수 있는 과일로 성욕이 낮아졌을 때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아보카도아보카도는 비타민 E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이다. 이 성분들은 피부와 점막의 수분 유지에 기여하며, 성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방 섭취가 부족하면 신체 전반이 건조해지고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 아보카도는 건강한 지방을 공급해 이러한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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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이 아프다면? 알아야 할 5가지

    많은 여성이 외음부통을 앓지만 정보부족과 수치심에 상담조차 받지 못한다. 현재 이 증상의 원인이나 치료법은 알려지지 않았다. 외음부통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 5가지를 소개한다. 1. 특별한 증상이 아니다 NCBI (전미 생명공학 정보 센터) 의 연구에 따르면, 외음부에 상습적인 통증을 경험한 여성이 16%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미국 여성 1천 300만 명에 해당한다. 2. 스트레스나 정신적 외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여성이 정신적 외상을 외음부통의 원인으로 여긴다. 그러나 둘의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반대로 외음부통이 심한 불안과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은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므로 자기 상태를 냉정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3. 화학적 자극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화학물질로 인한 피부자극도 의심할 수 있다. 화학 탈취제나 샴푸, 비누를 천연성분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이것이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의사들 사이에서 점점 가능성이 인정되고 있다. 4. 질염이 원인일 수 있다 질염의 통증은 외음부통의 통증과는 다르다. 다만 질염 치료를 소홀히 할 경우, 외음부통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5. 성경험 횟수와는 관계가 없다 성경험이 많으면 외음부통이 발생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많이 퍼져있다. 그러나 성경험 횟수나 섹스파트너의 숫자는 외음부통과 전혀 관계없다. 관련기사 외음부통, 이렇게 대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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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돔 사용하면 좋은 점, 나쁜 점

    콘돔은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피임 수단 중 하나다. 콘돔은 산아 제한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하지만, 성병 예방 등 혜택도 만만치 않다. 미국 의학사이트 뉴스메디컬닷넷은 ‘콘돔의 장단점’을 소개했다. ◇ 콘돔 사용이 좋은 점 • 처방전이 없어도 살 수 있다. 처방전과 보건의료 전문가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한 대부분의 피임법과는 다르다. 이 때문에 특히 10대들의 피임에 큰 도움이 된다. • 사용하기 쉽다. 호르몬 주사, 자궁 내 장치(IUD) 삽입 등은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관리 대상이다. 그러나 콘돔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 출산 능력을 신체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콘돔 사용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피임법이다. 다음에 성관계를 맺고 싶을 때 임신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 식료품점·공공 화장실의 콘돔 발매기 등 많은 곳에서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콘돔 한 갑을 아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 성병을 예방해 준다. 기본적으로 체액의 교환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콘돔의 사용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각종 성병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안전한 성관계에 도움이 된다. 파트너를 자주 바꾸는 사람들은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 콘돔 제조업체는 성 경험의 질을 높이기 위해 풍미와 질감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발기 시간을 연장하거나, 파트너의 쾌감을 높이는 등 여러 용도의 콘돔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 • 콘돔을 제대로 사용하면 피임 성공률이 높다. 콘돔은 대중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피임 수단이다. ◇ 콘돔 사용이 나쁜 점 • 라텍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일반 콘돔을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그 경우 폴리우레탄 콘돔, 양가죽으로 만든 콘돔을 쓸 수 있다. 특수 콘돔은 일반 콘돔보다 더 비싸다. • 콘돔을 사용하면 성관계 중 쾌감이 낮아진다고 호소하는 커플들이 꽤 많다. 일부 커플은 이를 라텍스 콘돔으로 인한 장벽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 콘돔은 유성 윤활유와 함께 사용할 수 없다. 수성 윤활유만 가능하다. 유성 윤활제를 쓸 경우, 라텍스 물질이 분해돼 콘돔이 성관계 도중에 찢어질 수 있다. • 성관계 중 과도한 마찰로 콘돔이 찢어져 원치 않는 임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사태는 음경에 콘돔을 씌우기 전에 잠시 기다리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성 행위를 중간에 멈추면 무드를 깰 우려가 있다. • 사정 후 콘돔이 미끄러지거나 정액이 질 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하려면, 음경이 축 늘어지기 전에 질에서 빼야 한다. 매번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콘돔을 제대로 빼서 처리하지 않으면 뜻밖에 임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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