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생활용품 시장 지각변동, 진원지는 '여성'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건물. 3층 창문은 요염한 여인의 실루엣이 그려진 불투명한 시트지로 발라져 있다. 낡은 간판에 적힌 네 글자만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준다. 성.인.용.품. 늙수그레한 중년 남성이 건물 앞에서 두리번거린다. 잠시 딴청을 피우는가 싶더니 잽싸게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나온 그는 손에 검은 봉지 하나를 들고 있다.’
흔히 ‘성인용품점’이라고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다. 워낙 음침하고 폐쇄적이었던 탓에 여성이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금녀의 방이었던 이곳이 바뀌고 있다. 억압됐던 여성의 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용 성생활용품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그에 발맞춰 매장은 밝고 개방적인 인테리어로 여성친화적인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부르는 이름도 ‘성인용품점’에서 ‘성생활용품점’, ‘섹스토이숍’으로 달라졌다.
최근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중심으로 플레져랩, 베아테우제, 라이트타운 등 밝은 분위기의 섹스토이숍이 성업을 이루고 있고 온라인에서는 여성친화적 명품 섹스토이몰을 표방하는 바디로닷컴이 지난달 문을 여는 등 성생활용품 시장이 여성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난해 개업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플레져랩은 여성친화적 섹스토이숍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공동창업자인 두 여사장은 여성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섹스토이숍을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 플레져랩의 밝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개업 초기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여성을 겨냥한 고급 콘셉트의 부티크를 지향하는 만큼 판매하는 섹스토이도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베아테우제(Beate Uhse)는 이달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자리를 틀었다. 독일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섹스토이업체 베아테우제의 한국 총판 소매 매장이다. 브랜드 슬로건 ('한번 시도해 보라‘-’Trau Dich Was‘)처럼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준비되어있다. 주 타깃은 20~40대 여성이다.
부산 진구 서면의 라이트 타운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5천여 가지의 상품을 갖추고 있어 가히 섹스토이 백화점이라 할만하다. 밝고 산뜻한 인테리어에 남/여 전용관이 따로 구비돼있어 여성이나 커플이 거부감없이 구경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프리미엄 성생활용품 쇼핑몰 바디로닷컴의 약진이 눈에 띈다. 바디로닷컴에서는 쇼핑몰 내에서 도색적인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여성의 접근성을 고려해 디자인과 레이아웃을 심플하면서도 품격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UI 역시 여성들이 익숙한 여타 종합쇼핑몰의 동선을 따랐다.
바디로닷컴은 상품선정에 있어서도 까다로운 검증절차를 두어 호응을 얻고 있다. 상품심의위원회를 두고 심의를 거친 상품만을 판매하는데 인체 유해성이 입증된 경우 100% 리콜해주는 시스템을 갖춰 신뢰를 얻고 있다. 100% 리콜 시스템은 업계 최초다. 또 ‘100% 정품’, ‘온라인 최저가’ 등의 정책을 시행하는 점도 꼼꼼하면서 합리적인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바디로닷컴 이신우 본부장은 “여성 카테고리의 상품이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또 “유럽의 경우 성생활용품 소비자의 70%~80%가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하고 “우리나라도 성 의식이 개방화되고 여성의 성 인식도 높아져 선진국형 시장 모델을 닮아가고 있는 만큼 여성생활용품 시장은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완종 기자 soxak@sox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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