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사실 시시껄렁한 음담패설 말고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 본 적도 없지 않는가? 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로이 대화하거나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게 현실 아닌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삶의 일부인 성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자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친구들도, 사실 그들이 가진 지식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사석에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나 싸구려 잡지와 포르노 등에서 보고 배운 흥미 위주의 왜곡된 정보들, 그게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얻은 고정관념뿐이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컨대 책방에서 성에 대한 책을 보고 싶어도 부끄럽고 민망해 구경조차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고, 진지하게 공부해보려 해도 그럴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책방에서 떳떳하게 책장도 못 넘기니 답답한 노릇이지만, 오히려 성에 대한 책을 보는 사람이 뭔가 이상한 거라고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주변 사람, 친구들, 인터넷, TV 등을 보면 요즘 성에 관한 것들이 자유롭게 열려있음을 알 수 있다. 방송에선 밤만 되면 ‘19금’ 장면들이 방영되고, 성에 대해 솔직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요즘 10대도 남녀 구분 없이 당연한 것처럼 성에 대한 말을 나누며 웃고 즐긴다.
나도 여자친구와 섹스에 관해 스스럼없이 많은 대화를 하기 때문에, 난 내가 성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자친구와는 그저 섹스라는 행위에 대해서만 말하고 알고 있을 뿐, 성에 대한 진정한 가치관은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저 나는 진심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섹스하면 된다고 믿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 않으면 불결하게 생각으니까.
어느 날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저 ‘섹드립’에 능해 친구들과 허허 웃던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나 스스로 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을 속여 온 것이다.”
위의 두 글은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성 의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하라’고 내준 과제의 결과물이다. 앞은 20년 전, 뒤는 올해의 것이다. 놀랍게도 20년 터울의 두 글에 담긴 생각은 거의 동시대라고 할 만큼 똑같다. 우리는 섹스를 하지만, 언제나 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성에 대한 학생들의 솔직한 대답은 “수많은 자기모순과 혼란, 이중성, 불명료함 등이 난마처럼 뒤얽혀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성에 관한 근원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는 신비의 열쇠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지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듯, 성은 자연스럽다. 피할 수 없다. 동시에 성은 우리 삶에서 가장 은밀하면서도 위험한 부분이다. 신비한 생명의 요람이고, 우리에게 짜릿한 쾌락과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끝없는 고통과 수치, 환멸과 혐오를 낳는 원인이기도 한 것이 성이다.
섹스하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 성 그 자체와 진지하고 솔직하게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외려 의문과 혼란에 휩싸인다. 성이 원래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가? 왜 우리는 성에 대해 불타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론 그 진실을 감추고 부인하는가? 왜 우리는 생명의 원천인 성을 숭배하고 칭송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럽고 불결하다 욕하며 금기의 대상으로 삼는가? 아니, 인간의 성에는 ‘객관적 진실’이라는 게 도대체 있기는 한 건가?
성과학(Sexualwissenschaft; sexology)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어차피 이 문제에 관한 진짜 전문가는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에 관한 객관적 진실? 분명히 있다! 그래서 성은 이론적으로 접근할 가치가 충분하다. 성은 평소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아리송해져버린 ‘등잔 밑의 어둠’인 것이다.
성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리고 이 충돌이 일으키는 소용돌이야말로 삶의 생생한 모습이고, 삶을 고뇌하는 진정한 사유의 탄생지다.
자, 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친숙한 두 가지 태도부터 극복해야 한다. 하나는 성을 단순한 음담패설(소위 ‘허리 아래의 이야기’)로 비하하는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로 성을 도덕 속에 가두는 일이다. 사실, 오랫동안 성은 단순 흥밋거리이든지 아니면 윤리적 심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실용적인 '성교육'이나 보수적인 '성윤리 확립'이 아니다. 어쩌면 성교육이나 성윤리는 모두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성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훈계하거나 설득하고 싶지 않다.
성에 관한 진정한 인문학적ㆍ비판적 성찰은 그런 성교육이나 성윤리 자체를 해부해야 한다. 성에 관한 사회적 통념과 도덕이 갖는 논리의 이면을 파헤침으로써 성을 더욱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에 대한 이해는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로 발전한다. 인간에게 성이 중요하다면, 우리는 “인간에게 성이란 무엇이며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물음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연결된다.
‘Sexualwissenschaft’(= sexual science)라는 용어는 독일의 의사이자 역사가, 성 연구자였던 이반 블로흐(Iwan Bloch)에 의해서 20세기 초 처음 사용되었고, ‘sexology’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1902년에 처음 사용되었다. 두 용어는 독어와 영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같은 것이지만, 유럽 대륙과 미국의 사회적ㆍ문화적 차이 때문에 두 용어가 적용되는 연구의 실제 범위와 목적 등은 상당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