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원의 춘화여행> 어부 아내의 꿈

일본의 화가 가즈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목판화. 《어부의 아내의 꿈》(The Dream of the Fisherman's Wife)


거대한 대왕문어가 굵고 긴 다리로 여인을 삼킬 듯이 온통 감싸고 있다. 문어의 여덟 개 촉수는 그녀의 하얗고 풍만한 몸을 끌어안듯 친친 감은 채 끈적이며 부드럽게 움직인다. ‘문어의 습격’이랄까? 그림을 조금만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문어다리의 위치가 의미심장하다. 문어는 빨판이 달린 다리로는 여자의 동그란 어깨와 양팔, 다리를 감싸 잡고, 예민한 성기 부분을 애무하면서 입으로는 여자의 외음부를 빨고 있다. 문어가 여자를 곧 잡아먹을 것 같지는 않고 희롱을 실컷 한 후에나 생각해 보려는가? 그런데 그림의 분위기는 불안하거나 위험스럽지 않다. 오히려 눈을 꼭 감은 여자의 벌린 입에서는 황홀한 신음소리가 감미롭게 나오는 것만 같다. 게다가 문어는 한 마리가 아니다. 작은 녀석 한 마리가 여자의 머리와 목을 스멀스멀 감싸 안고, 다리 하나로는 여자의 하얀 젖가슴 위 젖꼭지를 애무하면서 다른 다리를 여자의 입안에 넣고 있다.

 

여자의 자세 또한 강간을 당하는 자세라기보다는 다리를 벌리고 문어의 오럴섹스를 즐기는 것만 같다. 그녀가 성적 황홀경에 빠졌다는 것은 하얀 가슴 위에 딱딱하게 봉긋 선 젖꼭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문어의 굵고 가는 다리들은 계속 꿈틀대며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살갗을 애무하며 빨아들이듯, 쓰다듬고 있다. 문어의 동그란 두 눈은 위협적이라기보다 호기심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나 잘하고 있어?’라는 듯이.

 

이 그림은? 그렇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나온 바로 그 그림이다. 워낙 그림의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영화의 다른 부분은 기억 못해도 춘화의 그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이 그림은 ‘붉은 후지 산,’ ‘번개를 동반한 뇌우 속의 후지 산,’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등의 작품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일본 우키요에(浮世畵,풍속화) 작가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가 그린 춘화(春畵)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어부 아내의 꿈‘이다.

 

춘화는 중국에서 ‘춘궁화(春宮畵)’로 불렸다. ‘태자가 머무는 동궁(춘궁)에서 은밀히 보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태자의 성교육 그림을 가리키는 ‘춘궁비화(春宮秘畵)’의 준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춘화도(春花圖), 춘정화(春情畵), 춘의화(春意畵), 운우도(雲雨圖)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춘(春.)’은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이 생성되는 봄의 기운을 의미하고 운우(雲雨)는 남과여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도교와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말이다. 일본에서는 베개를 뜻하는 글자를 써서 ’마쿠라에(枕繪)‘, 또는 웃음을 터뜨리는 그림이란 뜻의 ’와라이에(笑繪)‘라 부른다.

 

어느 나라의 춘화도 대개가 성행위 자체나 그와 관련된 풍속화를 그린 것인데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것들은 모두 다 독특한 자기만의 특색을 가진다. 일본에는 성을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것으로 보는 성문화가 반영돼 만화처럼 가볍고 웃기는 춘화들이 많다. 또 강하며 아름다운 채색, 섬세한 인물 묘사, 성기 페티시즘이라 할 만큼 과장되게 그려진 커다란 성기, 화려한 의상과 가구 등이 특색이다. 일본의 춘화는 19C 유럽의 문화계, 특히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시초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일본 도자기를 싼 포장지에 그려진 우키요에(浮世繪‧14~19세기 주로 목판화로 표현된 풍속화)였다. 이렇게 알려진 일본 춘화의 독특한 화풍은 당시의 인상파 화가 모네와 마네, 고흐 등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어부 아내의 꿈’은 세계적으로 에로틱함과 음란함에서 정평이 나있는 명화다. 미국 허핑턴 포스트지에서는 ‘에로틱한 고전미술품 14’중에 두 번째로 선정했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이 그림을 특별전시하기도 했다.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작품인만큼 그림에 대한 해석은 아주 분분하다. 어부 남편이 바다에 일을 나간 지 오래돼 성적으로 허기를 느끼던 어부 부인이 곤한 하루일과에 지쳐 잠을 자다 문어에게 강간을 당하는 성몽(性夢)을 꾸는 중이라는 논평이 대세이다. 이 그림은 ‘촉수성애물(觸手性愛物‧Tentacle Erotica)’의 시초로 꼽힌다. 촉수성애물은 하나뿐인 인간 남자의 성기로는 불가능한 행위를 여러 개의 촉수를 이용해 여체를 감싸거나, 애무하고 심지어 여체의 항문이나 질, 입을 통해 관통하기도 하는 상상의 성행위를 표현한 음란물 장르다. 호쿠사이의 그림에서부터 최근의 다양한 포르노 영상까지, 사드마조히즘(SM)의 가학적인 면이 강조된 일본의 대표적 음란물인 것.

 

그림 속 ‘어부 아내’는 꿈속에서 폭력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끔찍이도 황홀한 정사를 즐기고 있다. 온 몸은 포박됐지만, 작은 두 손은 문어를 밀치기는커녕 마치 굵은 남자의 팔을 움켜쥐듯 붙잡고 있다. 다리는 오럴섹스에 가장 자연스러운 자세로 벌어져 있다. 성기를 얼굴의 크기만 하게 그리는 게 일본춘화의 특색인데, 커다란 그녀의 성기를 애무하는 문어의 쿤닐링구스(Cunnilingus)는 그래서 더욱 자극적이다. 여자는 눈을 감고 머리를 늘어뜨린 채 몸의 모든 예민한 부분에 끈적끈적한 애무를 받고 나른하게 늘어지면서 절정에 오른 모습이라 몹시 에로틱하다.

 

실제로 이 춘화의 배경에 쓰인 글(가키이레)은 섹스 중의 교성과 의태어로 채워져 있다. 춘화 속 마치 만화의 말풍선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가키이레는 에도시대의 고어(古語)라서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그림을 설명하는 말이나 은유하는 시라서 상상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이 글에 의하면 우리의 짐작과 달리 부인은 그저 수동적으로 ‘어쩔 수없이’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연인과 하는 것처럼 적극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여자는 오르가슴 중이면서 노래처럼 읊조리기도 한다. 여자는 분명 ‘작은 죽음(Petite Mort; 프랑스에서는 오르가슴을 ’작은 죽음‘이라 표현하기도 한다)을 겪는 중이다.

 

여자의 말은 그야말로 요새 인기인 야한 만화의 대사와 흡사하다. ‘아, 아, 아, 아...’의 신음소리로 시작된 여자의 말은 문어의 애무로 점점 쾌락의 절정에 오르면서 심지어 문어를 ‘얄미운 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어에게 점점 더 강한 오럴 섹스를 요구한다. 극대한 오르가슴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여자는 “아…, 미치겠다‘며 ’ 좋아요, 좋아요‘라더니 ’여성사정‘을 묘사하기도 하며 완전히 문어의 쿤닐링구스에 함락되어 있다. 오래전 에도시대의 춘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내뱉는 신음과 중얼거림은 지금의 포르노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부인의 이 자극적인 대사는 춘화를 보는 남자들을 더욱 흥분시키기 위한 장치이겠다. 일본의 춘화는 지금의 포르노에 전혀 손색이 없다.

 

또 그림 속 큰 문어와 작은 문어의 말도 있다. 큰 문어는 우리가 짐작한 것처럼 갑자기 부인을 덮친 것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며 ‘드디어 그녀를 잡았다’고 신이 나 한다. 큰 문어는 ‘열심히 쿤닐링구스로 그녀를 함락한 후 용궁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제자인 작은 문어는 ‘선생님’이 끝나면 자기 역시 빨판으로 그녀를 극대한 오르가슴으로 정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단한 문어들 아닌가?


성전문가의 시점에서 본 이 그림은 여자의 끈적끈적한 성몽이나 섹스 판타지를 표현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여자를 만족시키는 섹스에서 쾌감과 능력을 확인하는’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간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남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강간신화’에도 충실하다. 강간을 당하는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고 결국 자기도 즐긴다는. 또 두 마리의 문어는 남자들의 강력한 성적 판타지 중 하나인 쓰리썸! 호쿠사이의 이 그림이야말로 남자들이 갖고 있는 성적 판타지에 극한 상상력을 활짝 펼쳐준다.

 

여덟 개의 굵고 가는 촉수로 여체를 휘감아 그녀의 성감대를 모조리 자극하면서 그녀를 그야말로 실신상태의 오르가슴으로 몰아가는 환상적이고 주도적인 섹스를 상상하는 그 남자는 분명 여자의 섹스를 아주 잘 아는 경험 많은 남자이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린 호쿠사이가 그런 남자였겠지만….

 

여자의 오르가슴은 동시다발적인 애무가 필요하다. 남자들은 파트너를 열심히 애무하다가 그녀의 거친 신음소리에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성기를 삽입하려고 그녀의 몸에서 손이나 입을 떼는 찰라, 식어버리는 그녀의 냉정한 오르가슴에 힘 빠지기도 한다.

여자는 키스를 하며, 가슴과 성기를 동시에 애무하면 오르가슴에 쉽게 오른다, 하지만 이 오르가슴은 터치와 입맞춤에서 잠시 놓여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남자들은 그야말로 문어처럼 많은 다리, 그것도 빨판이 붙은 촉수의 다리가 부럽기만 할 것이다.

팔이 모자라 슬픈 동물, 섹스에서도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약한 그대는 남자!

 

배정원(성 전문가, 보건학 박사, 행복한 성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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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성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강의를 해왔다. 내일여성센터 교육팀장 및 성폭력상담소 상담부장, 경향신문 미디어칸성문화센터 소장, 제주 ‘건강과 성 박물관’ 초대 관장, 대한성학회 사무총장과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이며,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양성평등진흥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니 몸, 네 맘 얼마나 아니?>, <똑똑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섹스하라> 등이 있다.
댓글
  • 와, 이 그림이 후기인상파에 영향을 미쳤단....
  • 이런 춘화도를 보니 놀라울뿐이군요....
  • 성은 숨을 것이 아니라 나타내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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