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원의 춘화여행> 신윤복 춘화의 에로티시즘
장소는 사대부의 방. 책상 위로는 서책이 쌓여 있고, 옆에는 문방사우가 담긴 커다란 책장이 단정히 서 있다. 이른바 ‘지식인의 서재’다. 촛불이 켜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밤은 멀었다. ‘서재의 주인’은 책보단 여체를 ‘탐구’하고 있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여자는 이부자리 위에서 ‘미니 저고리’만 입은 채 아랫도리를 고스란히 내놓고 누워있다. 그 자세가 꽤 자연스러우니, 둘은 이미 꽤 여러 번 사랑을 나눈 ‘농익은 관계’로 보인다. 남자는 처진 가슴으로 보아 중년을 넘겨 노년으로 가는 나이이고, 여자는 땋은 머리카락이 풍성하고 검으며, 탱탱한 가슴을 보니 그 집의 젊은 여종이 틀림없다.
조선 후기에 집안의 상전이 여종을 불러들여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 흔해서일까. 이 젊은 여인의 태도는 태연스럽기만 하다. 서로의 성에 익숙해져서 장난을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해서인지 스스럼이 없다.
남자는 작은 잔을 들고 있다. 뭔가 부탁하는 듯,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잔을 가리키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요구에 부끄러운 듯 입을 가리기는 했지만,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짐작컨대, 남자는 손에 든 잔에 여자의 질액(膣液)을 받으려는 것 같다. 양반은 나이 어린 여자와의 성행위중 흥분해서 흘러나오는 질액을 받아 마시고 싶은 게다. 회춘(回春), 즉 다시 젊음을 찾는 것을 갈망하며.
이 해학적인 그림은 조선 화가 혜원(蕙園) 신윤복의 ‘춘화’ 중 하나다. 아직도 성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람은 혜원이 춘화를 그렸을 리 없다고 부정하지만, 혜원은 성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을 풍부하게 표현했다. 이 그림도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에 녹여 넣은 수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조선 후기의 성풍속화는 에로티시즘과 성 풍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술작품이다. 조선의 춘화는 일본 춘화보다 덜 일탈적이고, 중국 춘화보다는 덜 색정적이며, 문인화나 산수화처럼 격조가 있다.
조선은 알다시피 성리학의 나라이고, 남녀가 유별하며 인간의 본성인 성에 많은 억압과 통제를 가했던 엄격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에서 궁중화가로 유명했던 신윤복이 춘화를 그려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유례없이 엄격하게 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였지만, 왕가의 계승을 위해서는 세자나 세자빈, 후궁들에 대한 성의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조선의 춘화는 중국과 일본에서 전해진 춘화나 음란서적, 성기구의 영향도 받았겠지만, 18세기 전후 경제성장을 토대로 중상류 계층이 확산되면서 부를 소유한 이들을 중심으로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가 번지며 더욱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의 춘화가 기기묘묘한 체위의 묘사나 성행위 장면을 노골적으로 과장하여 그려냈다면, 조선의 춘화는 남녀의 섹스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유추하도록 한다. 실제 성행위 장면보다 섹스 전후를 암시하는, 농밀한 수작 같은 분위기와 은근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조선 춘화의 특색이다. 단원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 혜원 신윤복의 ‘건곤일회도첩(乾坤一會圖帖)’, 정재 최우석의 ‘운우도화첩(雲雨圖畵帖)’ 등 조선춘화는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보편적 행태의 성행위를 보여준다.
상당수 조선의 춘화에서는 중국 춘화와 마찬가지로 도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도가의 수행법인 ‘양생술(養生術)’과 ‘방중술(房中術)’에서는 ‘여러 여성과 돌아가며 관계’하고, ‘되도록 사정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즉 여자를 절정에 이르게 하지만 남자 자신의 정기는 보전하는 것, 그래서 사정하지 않고, 그 에너지를 보전함으로써 여자의 음기로 남자의 양기를 보충해서 자신의 건강과 장수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 통용되는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많은 남자들이 현재까지도 지향하는 ‘접이불루(接以不漏)’ ‘섹스는 하되 사정하지 않거나 늦출수록 좋다’는 이론이 바로 도가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왕가(王家)의 계승을 위해 많은 처첩을 거느렸던 왕들이 왕비나 후궁들과 섹스를 하면서 불응기(不應期)가 오지 않도록, 가능하면 사정을 참고 여러 여자들과 섹스를 해야 했던 탓에 방중술과 양생술이 왕가에서 익혀야 할 절체절명의 비술이었을 수 있다. 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정을 참고, 여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정을 시켜야 했기에 여러 가지 기기묘묘한 방중술을 익혀야 하는 아이러니!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조선의 춘화는 직접적으로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 슬쩍 뚱기기 때문에 이 노인이 애액을 마시려는지 100%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간에서 젊은 여자의 애액(愛液)을 그대로 마시거나 대추를 담가 놓았다가 삼투압으로 통통하게 불은 것을 먹으면 젊은 남자처럼 강인해 질 수 있다는 회춘의 비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림을 보면 남자는 이날을 위해 꽤 많은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여자가 누운 이부자리 옆에는 작은 술병과 두루마리 종이가 놓여 있다. 남자는 여자의 허락을 받기 위해 여자에게 술을 권해 취기가 돌게 했을 것이고, 또 두루마리 춘화를 함께 보면서 여자를 흥분시켰을 것이다. 양반인 주인이 웬만해서는 ‘아랫것’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춘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날은 ‘특별한 주문’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한 것일 터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여자의 ‘애액’ 이야기다.
여자 역시 성적으로 흥분하면 성기에 피가 모인다. 이른바 여자의 발기현상이다. 여성 성기에 모인 피는 호르몬 샘과 땀샘을 자극하고, 음순과 질에서 윤활액이 분비하도록 부채질한다. 하지만 남자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여자의 질액이 분비돼 ‘젖었다’고 해서 여자가 완전히 준비된 것은 아니다. 이때부터 여자가 ‘흥분 모드’에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녀가 젖었다고 해서 서둘러 삽입을 시도했다가는 그녀에게 쾌감보다 통증을 선사하기 십상이다. 또 그녀는 ‘가짜 오르가슴(Fake Orgasm)’을 연기해야할 지 모른다. 충분히 그녀가 흥분했을 때, 그녀가 요구할 때 그때가 삽입의 적기인 것이다. 잊지 마시길, 삽입의 시기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정하는 것임을!
배정원(성전문가, 보건학 박사, 행복한 성문화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