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슴이 지속되는 이상한 병

지속성 오르가슴 증후군은 아직까지 치료법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shurtterstock.com)


세상에는 희한한 병이 의외로 많습니다. 여성의 약 40%는 평생 한 번도 오르가슴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여성들은 시도 때도 없이 오르가슴(orgasm)이 시작돼 하루 종일 그것도 몇날 며칠이나 지속돼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이 병 환자 2명을 진료했습니다. 먼저 42세의 주부가 인천에서 제가 진료하고 있는 전주까지 오셨습니다. 올해 3월부터 증세가 시작됐고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일주일 이상 잠 잘 때를 빼고는 계속된다고 합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지만 증세가 계속 따라다닌다고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남편은 물론, 어느 누구하고도 상의할 수 없어 자살충동까지 느꼈답니다.


또 한분은 전주에 살고 있는 72세 된 할머니였습니다. 이분은 따님과 함께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이분은 “그나마 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딸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딸이 인터넷을 뒤져서 제가 쓴 글을 봤고 어머니를 모시고 온 것입니다.

문제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이 병에 대해서 칼럼을 썼지만 문헌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지 진료해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42세 주부는 오르가슴이 시작되는 부위가 질 입구의 지-스팟(G-Spot)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새벽 6시에 일어나면 대개 오전 8시부터 증상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밤에 억지로 수면제를 먹고 잠들 때까지 옆에 누가 있건 말건 흥분이 지속됐습니다. 오르가슴이 왔다고 신음을 내뱉을 수도 없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표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괴로웠다는 겁니다. 얼마나 힘이 들까요?

72세 할머니는 시작 부위가 음핵(공알)과 요도 사이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1주일에 2, 3회 증세로 ‘고통’ 받았습니다. 할머니 역시 한 번 시작하면 몇 시간 흥분이 지속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병은 ‘성적흥분지속증후군(Persistent Sexual Arousal Syndrome. PSAS)' 또는 ‘지속성 생식기 흥분장애(Persistent Genital Arousal Disorder. PGAD)’ 등의 이름이 있지만, 제가 명명한 ‘지속성 오르가슴 증후군(Persistent Orgasm Syndrome. POS)’이라는 용어가 더 이해하기 쉬우면서 적합한 듯합니다.

 

문헌에 따르면 증세가 다양합니다. 공 알이 애무를 받을 때처럼 짜릿짜릿하고, 질 안이 후끈거리거나 질 액이 넘칩니다. 질이 꿈틀 꿈틀대는 느낌이 머리까지 치고 올라오기도 합니다. 어떤 환자는 방광에 소변이 차기만 해도 묵직한 느낌과 함께 성욕 때문에 몸부림친다고 합니다.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나기도 하지요. 성관계의 절정이라면 행복하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느낌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한편 부인과 영역에서는 음부 통(Vulvodynia)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병도 원인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음부의 특정 부위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생겨 성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병입니다. 치료법으로는 국소 마취제를 특정 부위에 주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 병원에 어쩌다 한번 씩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이 치료법을 사용해보니 분명 효과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속성 오르가슴 증후군이 음부통과 증상은 다르지만 음부 통처럼 말초신경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국소마취제를 오르가슴이 시작되는 부위에 주사했습니다. 환자는 하루, 이틀 오르가슴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곧 재발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저는 ‘이 분들을 어떻게 도와주지’하면서 고민을 거듭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한 학술대회에서 성(性)의학 분야의 대가로 꼽히는 교수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들 교수에게 ‘지속성 오르가슴 환자’들을 진료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들도 문헌에서만 보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교수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인천과 전주에 환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잘 안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찾아보면 꽤 많은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남에게 말도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심지어 자살충동까지 느끼면서 살고 있는 환자를 찾아내 도와줍시다. 함께 체계적인 공동 연구를 통하여 함께 근본적인 치료법을 찾으면 어떨까요?”

 

교수들은 제 제안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여러 환자들을 보다 보면 증상의 공통점을 찾게 될 것이고, 오르가슴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겠지요? 하루빨리 이러한 연구결과가 나와 주어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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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file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장 및 장학재단 이사장, 미국 토머스 재퍼슨 의과대학 산부인과 객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총장,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다. 1987년부터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두씨 탯줄 가위, 일회용 내시경 마우스피스, 두씨 색시 수술법 등의 수술기구와 수술법을 개발하여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저서로는 <알면 약, 모르면 병>이 있다.
댓글
  • 오르가슴을 못 느끼는 여성들이 태반인데 하루종일 오르가슴을 느끼는 병이라...세상엔 정말 우리가 모르는 질병이 많네요.
  • 과유불급의 적절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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