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이라면, 나란히 앉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언젠가부터 남자랑 만나면 마주 보고 앉는다. 1번, 내 남자가 아니니까. 2번, 내 옆자리에 앉으려면 내 남자여야 하니까. 물론, 여러 명이 한자리에 앉으면 나의 원칙은 깨진다. 하지만 1:1 미팅이라면 무조건 나는 남자의 맞은편에 앉는다. 내 남자의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내 옆에 마음대로 앉을 수 있다. 나는 이 소중한 지침을 대학 1학년 때 깨달았다.

 

그때 내 남자친구는 나와 같은 동아리 멤버였고, 한창 불타오를 때였다.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내가 좀 늦었다. 그래서였을까. 모임에 오자마자 남자친구 옆에 쪼르르 가서 앉는 건 왜인지 쑥스러워서 그가 앉은 곳과 대각선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모임 내내 남자친구는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기 옆이 아닌, 딴 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나의 행동을 일종의 보복(?)이라고 생각했던 것. 어리고 어리석은 커플. 지금은 그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 다른 사람들이 눈꼴시어하든 말든 연인이라면 도서관에서든 술집에서든 살이 닿게 앉아야 한다.

 

나란히 앉아서는 관계의 단절이 힘들다. 허벅지를 붙인 채 누군가와 이별을 고하는 사람은 없지않은가. 가까이 앉으면 살만큼이나 함께 나눈 시간을 떠나보내기가 힘들다. 특히나 첫 데이트에서 곧바로 침대를 노리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마주 보고 앉으면 안 된다.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대화가 잠시 끊긴다? 그 순간에 전화를 꺼내 든다거나 하면 이 자리가 지겹다는 신호로 상대방은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가슴(너무 노골적인 건 재미도, 감동도 없다!)이나 어깨너머 딴사람을 보는 행위도 금물.

 

나란히 앉으면 이런 침묵이 그리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함께 지켜볼 무언가가 앞에 있기 때문이다. 잠시 대화의 소재가 떨어져도 이내 눈앞의 광경을 통해 또 이야깃거리를 끌어낼 수 있다. 물론 대화의 달인이라면 눈앞에 아무것도 없어도 밤새도록 떠들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또, 가까이에 앉으면 스킨십을 빨리, 자주 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 어깨나 무릎을 슬쩍 스치거나 팔에 손을 얹는 등의 터치 말이다. 비벼지는 허벅지가 말을 하게 한다. ‘너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리듬을 이어 침대로 장면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엎어질 게 아니라 나란히, 함께 뒤로 넘어간다. 몇 년을 같은 사람과 섹스해도 소위 ‘마가 뜨는’ 순간이 있다. 불이 붙어서 우르르르(?) 피스톤 운동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면 속옷을 벗기 전후, 침대에 나란히 눕기 직전 같은 타이밍이다. 뭔가 대단히 뜨거운 전략이 없으면, 일단 침대에 나란히 앉자. 그리고 서로의 허벅지와 어깨를 나른하게 비빈다. 명치와 골반에 은근한 불을 심듯이. 단순한 동작이지만 파트너의 노력이 느껴진다. 섹스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건 대개 성의 부족 때문이다. 섹스시간이나 성기 크기에 화살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핵심은 성의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긴데, 여자의 질은 아기 몸통도 지나가는 통로다. 그러니 천하의 자이언트 페니스라도 익숙해지면…

 

최근에 어느 지인과 대화를 하다 나란히 앉기 이야기가 나왔다. 당연히 나는 커플 스킨십에 있어 나란히 앉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열변을 토했다. 내 말을 한참 듣던 지인 왈,

 

 "근데 지금 내가 나란히 앉으면, 그게 우리 와이프래도 다들 불륜이라고 생각할걸?"


이런.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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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자기계발우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의 저자. 경향신문사 40기 출판국 기자로 출발, <레이디경향>, 에서 생활팀 에디터로 활약했다. <주부생활>, <마이웨딩>, <스포츠칸>, , <싱글즈>, <엘르>, <코메디닷컴> 등의 신문, 잡지에 솔직담백한 섹스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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