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향기와 정액


정액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유사한 냄새를 알아차리면서부터다. 6월 이맘때였다. 학교 중앙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말고 잠시 남자친구랑 교정을 거닐며 저녁 산책을 했다. 아, 밤꽃 냄새. 남자친구의 입에서 식물 이름이 튀어나오다니. 꽃향기라기엔 발 고린내처럼 비릿한 냄새도 그렇고, 밤나무가 흔한 나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남자친구가 식물의 이름을 언급한 게 신기했다. 어떻게 냄새만으로 밤꽃인 줄 알았어? 나는 밤꽃 냄새가 장미처럼 다들 아는 향기인데 나만 몰랐던 거 같아서 왠지 억울한 기분이었다. 아아~밤꽃 냄새가 남자 정액이랑 냄새가 비슷하거든. 그렇구나. 남친의 대답을 듣자마자, 내가 모를만하네, 라고 생각했다. 이미 사진과 영상으로 정액을 수도 없이 봤어도 실물, 특히 정액의 냄새를 그때까지 제대로 맡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액을 실물로 접했다. 곧바로 밤꽃 냄새를 떠올렸다. 정말 비슷하다. 전립선액에 들어있는 스퍼민이란 성분 덕이다. 그리고 비리다는 감상. 내가 상상한 정액의 맛은, 생크림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이건 포르노물 감상 덕에 가진 선입견(?)이었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포르노 영화였는데, 벌거벗은 왕과 궁녀가 방금 왕이 사정한 정액을 은쟁반 속 생크림 접시에 섞어 서로 사이좋게 나눠 먹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정액을 한 입 먹어보니 향기로운 음식을 섞으면 식감이(?) 한결 괜찮겠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을 봤다. 남자주인공이 복숭아를 먹다 말고 아주 외설적인 손짓으로 복숭아 윗부분을 뜯어낸다. 그런 다음 구멍 난 복숭아 중앙에 자기 페니스를 끼워 넣고 자위를 한다. 그의 가슴에는 복숭아를 뜯어내다 튄, 과즙이 흘러넘치고, 벌려진 복숭아 속엔 그의 정액이 흘러넘친다. 달콤한 복숭아 살과 정액의 조합, 음. 이것보다 더 달콤/신선/섹시한 조합은, 당장은, 생각나지 않는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정액의 맛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아직 확실한 연구 결과가 뒷받침된 내용은 아니다. 그러니 복숭아를 트럭으로 해치운 다음 섹스를 한다고 해서 당신의 정액이 갑자기 달달해지는 일은 없을 거다. 물론 과일을 많이 먹었으니 정액이 좀 더 향기롭진 않을까 하는, 즐거운 기대감을 품는 건 자유다.

 

살면서 처음으로 정액을 입에 담았을 때, 사실 삼키지는 않았다. 기껏 해봐야 1티스푼 정도의 양이지만 정신적으로 느끼는 양은 일본의 몬자야키 반죽을 그릇 채로 입에 밀어 넣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남친에게 양해를 구하고 크리넥스 티슈 뭉치에 그대로 다 뱉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어릴 때는 무얼 입에 집어넣든 다이어트와 연계시켰다. 그래서 정액을 머금고 있을 때도 이걸 몸 안에 집어넣으면 살이 찔까, 하는 미친 생각을 했다. 정말로. 탄탄한 남친의 복부와 말랑한 내 허릿살을 다시금 번개처럼 체크하면서 말이다.

 

정액은 단백질을 비롯해 미네랄,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성분을 포함하고 있지만 80% 이상이 수분이다. 또 3.4ml 정도의 평균 사정액을 칼로리로 환산하면 1 칼로리가 채 안 된다. 영양학적으로 가치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지만 칼로리만은 다이어트 코크를 마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덕분에 갑자기 정액에 더 ‘호감’을 느낀다. 입만 다이어터인 사람의 고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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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자기계발우화 <나는 발칙한 칼럼니스트다>의 저자. 경향신문사 40기 출판국 기자로 출발, <레이디경향>, 에서 생활팀 에디터로 활약했다. <주부생활>, <마이웨딩>, <스포츠칸>, , <싱글즈>, <엘르>, <코메디닷컴> 등의 신문, 잡지에 솔직담백한 섹스칼럼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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